엄마의 무거운 침묵(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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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그리며/신사임당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읆조리는 시로 엄마를 생각하게한다 고향에 어머니 홀로 두고 온 마음이 저리게 전해저 오는 시다 산 첩첩 내고향 여기서 천 리 꿈 속에서도 오로지 고향 생각 뿐 한송정 언덕 위에 외로이 뜬 달 경포대 앞에는 한줄기 바람 갈매기는 모래톱에 헤어졌다 꼬이고 고깃 배는 바다위를 오고 가겠지 언제쯤 강릉 길 다시 밟아가 어머니 곁에 안자아 바느질 할 꼬
2020.06.27 -
엄마가 남긴 물건
이모가 전화를 했다 바닷가 펜션을 예약해 두었으니 며칠 쉬고 오라고 하신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나를 배려해 주신 이모 마음이 고마웠다. 펜션에서 홀로 잠을 청하려는 데 전화가 울린다 동생이었다 막냇동생의 가족들과 함께 오겠단다 아이들과 함께 대 식구가 된 우리는 쉬는 것이 아니라 번잡하기만 했다. 3일 밤을 지내고 서울로 출발하기 전 엄마를 찾았다 흙더미 속에 갇힌 엄마는 여전히 침묵의 말씀을 하신다 "잘 가거라" 나 고생할까 봐 그러셨는지, 내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냥 가 버리신 엄마는 그렇게 나를 밀어내셨다. "엄마 나 여기 다시는 안 올 거야" "흙더미 속에 누워 있는 엄마를 나는 인정 안 할 거야, " 8년을 시설에서 지내신 엄마가 남긴 물건은 입다가 남겨진 옷 가지와 못 다 드신 약들,..
2020.06.24 -
엄마의 유품
엄마는 아버지 옆으로 가셨다. 2주 전에 엄마와 합께 아버지 산소를 방문했을 때 "나 좀 데려가시오" 하시던 말을 듣고 아버지가 데려가셨나 보다. 하관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살던 집으로 갔다. 지금은 오빠가 살고 있지만, 엄마 아빠가 지으시고 애착을 가지고 가꾸셨던 곳 엄마의 손때 묻은 살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 마지막으로 나는 엄마의 67년 인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그곳을, 엄마의 채취가 있고 손 때 묻은 곳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것은 엄마의 67년 인생의 흔적을 내 눈에 담을 마지막 일 것이다. 다행히도 대문이 열여 있어 들어가 본 집은 그야 말고 창고였다. 아버지는 꽃을 좋아하셔서 넓은 터 여기저기에 다양한 꽃들을 가꾸셨다 희귀한 꽃들이 있는 집으로 통할만큼, 꽃들의 정원이었는데 아버지가 가..
2020.06.23 -
몰래 결혼했던 동생의 이혼
엄마 모시는 걸 거절하고 재혼의 길을 택한 여동생은 재혼한 지 4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혼을 했다. 잘 살길 바랬지만 주변의 바람과 달리 끝을 낸 것이다. 첫 단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주변에 오빠들이 둘이나 있지만, 알리지도 않았고, 나에게 역시 알리지 않았었다. 이웃에 사는 막내 남동생만이 결혼식에 참여를 했단다. 첫 결혼을 실패한 동생은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첫 번째 결혼할 당시 상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10년 위인 나를 뜯을 정도로 자기가 원했던 결혼이었지만 이혼 또한 자기가 스스로 끝을 냈던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약지 못한 동생이 안타깝다 두 번의 결혼 실패의 원인은 돈이었다 동생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동생의 것인 줄 알고 있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날로 법원으로 가 이혼 절차를 밟은..
2020.06.23 -
엄마가 돌아가셨단다
내가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랜딩을 했다. 평소 여행 시에는 짐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던 나는 엄마와 생활하려면 필요한, 때 이른 옷 가지를 넣었기에 케리어를 끌게 되었다. 트랙을 빠져나오는데 주위 사람들께 미안할 정도로 핸드폰이 요란하게 신호를 한다. 깨똑 깨 깨 똑 트랙을 빠져나와 한쪽에 서서 확인한 후 나는 순간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서울로 가지 말고 여수행 비행기로 바로 이동해서 오라는 메시지였다. 사람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건강하던 분이 토했다고,, 당이 좀 올라갔다고,, 그렇게 돌아가신 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괸찮아졌다고 했는데,, 정신없이 난리를 치고 개찰구를 빠져나왔지만 여수행 비행기도, 열차도, 공항버스도 다 끈 긴 상태였다, 결국 강남터미널에서 고속으로..
2020.06.21 -
말이 없어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엄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엄마가 아직 인지도 있고 기동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노라 다짐하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 내게 남편이 동행을 하겠단다. 자신의 형제들도 노년기에 있으니 겸사겸사 함께 가겠노란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 함께 갔다 2년 만에 나를 보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리 아니냐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요 반갑지 않아" 별 반응을 하지 않으신다. "엄마 이 사람은 누구야?, ""니 서방 아니냐"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급하게 남편을 누나 내로 보내고 엄마와 고향을 향해 여행을 했지만 달라지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침..
2020.06.21 -
엄마가 치매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앞에 흔한 찻잔은 없지만 심도 있게 예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사시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예상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어 나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일찍 히 다짐을 했었다. 만일 엄마가 자주적인 행동에 어려움을 겪든지, "치매"라는 손님이 찾아올 때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 는 생각으로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라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했지만 단호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내 생각을 예기했다. 동생은 화를 냈다 "왜 언니는 거꾸로 살고 있어, 남들은 그런 상태가 되면 시설로 들어가는데, 왜 반대로 해 반대로, " 나만 거꾸로 산단다, 노인성 치매 초기라 아직 이상은 보이 지를 않지만, 내 마음은 급해졌다..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