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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의 요양 시설을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가 있다. 날마다 한국으로 보내 달라 조르던 엄마는 드디어 옷들도 싸 두었다. 사워 후 몸을 감싸던 대형 타월이 좋으셨는지 당신이 쓰시던 타월을 함께 넣으셨다. "엄마, 쓰던 수건을 왜 가져가려고 그래, 짐만 되는데 " "내가 쓰던 거니까" 엄마한테 이해를 시키기 위해 나의 생각을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보내기 싫다고,,, 앞으로 끝까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고 엄마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아니 포기하는 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한국 정서에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한인들이 있는 요양시설이 있다 낮에 노인들을 모시고가 온종일 식사와 간식을 주기도 하고 시간에 맞춰 특별한 운..
2020.06.18 -
한국행을 원하시는 엄마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은 엄마는 준비해 두고 간 식사를 거르신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엄마 식사를 준비해 같이 먹는다 준비 해 두고 간 간단한 식사도 거르시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영양식으로 건강 회복을 시키고자 작정하고 애를 쓰는데 엄마는 혼자라는 이유로 식사를 거르고 계시니 많이 속이 상했다 싫은 소리를 한 후 엄마가 안쓰러워 엄마 한태 물었다 "엄마 서운해? 내가 화 내서 서운해요?" "아니 안 서운해 " 그렇게 대답하시는 엄마가 더 가슴 아파서 속이 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직장을 고집하고 다녔는지 후회가 많다 그때 만일 퇴직하고 엄마와 함께 했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텐데,, 이런 후회가 남을 것을 알면서도 직장을 그만 두지 못했던 건 결혼이 늦은 나에게 아이들이 이..
2020.06.18 -
엄마를 외면하고 남자를선택한 동생
미국에 도착하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양식이었다 그동안 심각하게 부실했던 식사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출근해야 했던 나는 새벽이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비 해 두고 갔다. 퇴근 후엔 목욕을 시켰고 또 식사를 준비했다 엄마를 두고 출근하는 데도 마음이 편했던 건 동생이 함께 있으니 가능했다. 준비 해 둔 식사는 다 잘하신다. 한 가지는 식사 시간이다 정신없이 들이붓듯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보는 이가 숨이 차다 땀을 흘리며 급하게, 씹지도 않고 삼키시는 걸 보면서 그동안 어떤 식사를 해 오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드시라고 하지만 숨차고 급하게 드시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수저를 붙잡고 천천히 드시라고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하시지만 다시금 수저가 바빠..
2020.06.17 -
너는 안 늙을 거라 생각하니
여동생 집에 머물고 계시는 엄마를 방문했다. 많이 좋아 보였다. 움추러져서 작아졌던 키도 많이 펴진 듯했고 얼굴의 병색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가슴을 들썩이며 쉬셨던 호흡이 많이 편해지셨다 집중치료를 받은 결과로 쌕쌕하던 소리도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치아 관리는 못하셔서 부스러지고 깨어져 있던, 앞쪽 남겨진 뿌리 이가 입술을 찔러서 불편을 겪고 계셨다. 아직도 입술 주위에 붉게 번진 이상증세는 가라앉지 않았고 무릎 문제 역시 해결이 되지를 않았다. 혼자 사는 동생이 엄마를 모시기가 힘겨운가 보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활동적인 동생은 온종일 엄마로 인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싫은 눈치다. 이혼 후 자유롭게 살던 그녀는 그 자유를 침해받는 것을 불편해한다. 막내 남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가려고..
2020.06.16 -
허공에서 걸어가는 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느꼈던 느낌은 내 발이 걸을 때 땅을 닿지 않은 듯했다. 발이 디딜 곳이 없어 허공에서 헛 발질로 걷는 것 같은 느낌,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다 앞으로 가려해도 제자리에서 발이 시늉만으로 걸어가고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그런 느낌. 나는, 나는 그랬었다. 그런데 아들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지극 정성이던 그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니 자신들이 왕권을 잡은 패륜 왕처럼 모든 것을 자신들 뜻대로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식이라고 완벽히 믿어버린 어리숙한 엄마를 속여서 불법으로 집을 빼앗고 작은 아들은 노년에 병원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아버지가 엄마에게 남겨두신 돈울 통장체 가로 채 갔다. 다 가져가라, 가져가는 것 나는 관심이 없었다. 어..
2020.06.16 -
법적 자식을 맺어진 사이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계실 때 오빠를 찾아갔다. 함께 의논을 해야 했기에 큰 동생을 불렀다. 큰 올케는 일부러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다. 조카아이는 건넌방에 있으면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늦은 시간 의논하게 된 이유는 큰 올케가 추워서 엄마 집에서 더 이상은 못살겠단다. 할 말이 없었다. 못살겠으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통보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런 올케한테 엄마는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말이 없다. 다시 물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정확하고 단호히 생각을 말해 달라 내가 와 있는 동안에 엄마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니 확실한 예기를 이 자리에서 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올케가 하는 말이 자기는 추워서 아파트로 가고 오빠가 엄마와 함께 여기 살게 하겠단다. 두 마리 ..
2020.06.16 -
자식이란 무엇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 후 나는 엄마를 방문했다. 엄마 모시고 있는 올케가 감사해 주려고 산 명품 가방을 들고. 엄마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2년 만에 본 엄마는 살아 계신 분이라고 상상이 안될 정도의 몰골이셨다 키는 절반 정도로 낮아져 있었고 얼굴빛이 검게 변해 병색에 찌들어져 있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를 못하시며 기침이 너무 잦아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부풀리며 한숨 한숨을 힘들게 쉬고 계셨다. 단 숨에 2M를 걷지 못할 정도이며 치아는 썩고 부스러져 몇 개 뿌리만 남아 있었다. 세상에 기가 막혔다. 사람이 2년 만에 이렇게 될 수가,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함께 사는 올케 마음을 거스르게 될까 봐 나는 내심을 감추었다. 엄마는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
2020.06.16 -
아버지 죄송합니다.그리고 존경하고 사랑 합니다.
8년 전에 엄마를 미국으로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홀로 남은 엄마가 걱정이 되어 미국에서 나랑 함께 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히 거절하셨고 더 이상 설득을 못한 나는 엄마를 여동생에게 맡겨두고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나는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면 가슴부터 방망이 질이며, 생활을 하면서도 온갖 신경은 고향 부모님께 향해 있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긴장감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 대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되었고,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를 뵙고 작지만 안도의 쉼을 갖었었다 위 전체를 들어내신 아버지는 상상하고 염려했던 것보다 좋아 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큰 남동생이 고생이 많았다는 걸 알았다. 동생은 ..
2020.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