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6. 09:14ㆍ나그네의 미국생활/일상 생활속에 이모저모
70번째 6.25를 맞으며 아버지를 생각하게 한다
특히 올해는 "6.25가 발발한 지 , 70돌"이라는 글자에 유난히 가슴이 먹먹해 온다.
우리 곁을 떠나신 지 10년이 넘은 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셨다.
1950년 21살 청년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결혼한 지 3개월 된 새댁을 남겨두고 군대를 가셨다
아직 서로가 낮 선 신혼부부는 어른들 앞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해어졌다 했다
그 후 9개월 만에 돌아오신 아버지는 엄청난 부상을 입고 제대를 하셨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해주시던 말씀으로는
전쟁 중에서 가장 치열했던 순간에 치열했던 장소인 강원도 어느 산속에서 싸우시다
날아든 포탄에 몸이 흩어져 날아갔다. 고 했다
( 내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백골부대인지 백마부대인지 백마고지라고 들었던 것 같다)
그지역 어느 곳에 아버지의 양팔이 묻혀 있을 것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해 진다,
그 후 얼마나 있었던지 국군병원에서 깨어나신 아버지는
여러 차례 자살시도를 해 의료진들의 애를 먹이시다가
미군 의사에게 뺨까지 맞았다는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 생각이 난다.
그 의사가 때리시며 말하기를 "나는 너를 살리려고 밤낮을 힘써서 살려 놓으니 니 마은 대로 죽으려고 하느냐"며
호통을 쳤다고 했다.
병원에서 깨어나신 아버지는 몸의 일부가 없어졌음을 알았고,
21살 젊은 청년에게 자고 일어나니
두 팔이 없어졌다는 건 엄청난 좌절을 넘어 당연히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아버지께 옷을 입혀 드리면서 볼때면 내 아버지의 몸은 성한 곳이 없었다
잃을 뻔 한 한쪽 다리를 미군 의사에 의해 건진 상처는
앞 정갱에 살이 없이 뼈가 종이가 붙여져 있는것 같았고,
배꼽 주위 복부에는 엄청난 상처가 내장과 유착된 듯 파여 있고
양팔은 평생을 의수로 사시 었다.
엄마는 자신의 평생을 당신의 삶이 없이 아버지의 그림자로 사시면서
아버지의 손 발이 되어줘야 했다.
전쟁에 트라우마로 거칠어진 아버지의 상처를 외할머니는 달래며 어르며 치유해 나갔다.
한 사람을 전쟁이라는 사건에 의해 망가트렸고
그것을 회복해 가는 과정엔 여러 사람의 삶이 희생이 되고 힘들었음의 증거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눈물이 난다
왜 좀 더 일찍 아버지의 아픔을 알지 못했을까
왜 좀더 일찍 한 인간으로 엄마의 애로사항을 이해 못했을까?
두 분 돌아가시고 난 후 이런 글을 쓰면서 비로소
아버지를 그리고 엄마의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된 내가 많이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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