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걸어가는 쓸쓸한 그길로

2020. 6. 9. 00:17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꽃을 좋아 하셨던 아버지께 이 꽃을 바침니다

 

잠시 쉬었던 엄마를 모시고 식당으로 갔다.

호텔 주변에 여러 음식점들이 있었지만 나는 아는 데가 없었다

가까운 곳 눈에 띄는 음식점을 들어서는데 입구가 어두웠다.

터덕거리는 엄마를 부축해 직원이 안내해 주는 대로 자리를 잡고 않았다.

입구 주변에 있던 자리였다

입구와는 달리 안쪽 홀은 조금 밝았으나 환하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도 테이블과 의자들이 검은색이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무엇을 주문해야 하나 메뉴를 정하지를 못하고 있다가 

직원이 추천 해 주는 데로 코스요리를 시켰다.

무슨 맛인지 무슨 기분인지 입맛만 써서 

천천히 차례대로 이어지는 접시들이 귀찮기만 했다 

엄마 역시 입맛을 못느끼시는 것 같아 

메인이 나오자마자 자리를 일어났다

그것을 먹어 볼 생각마져 귀찮아졌다

호텔로 돌아온 엄마는 씻는 것 까지 거절하고 침대에 누우신다 

 등돌려 누운 엄마를 두고 소파로 같다

저녁 9시쯤의 창밖은 차량들로 바쁘다.

여러 불빛들이 지역을 수놓듯 화려하게 꾸민다

그 너머 바다는 어두움이 깔려 보이지 않는데 

호텔 가까운 지역만 불빛의 향연이다

내 마음이 저 보이지 않은 바다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정말로 오빠를 못 알아봤을까

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시는 걸까

큰 시누이 집에 가 있던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의 전화가 반갑지 않은 것은

그 역시 내 생애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 경험 속에서 나는 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 필요할 때 나를 찾는 사람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은 한사코 피해 가며 살아온 사람 

 몇 년 전부터 엄마를 모시러 한국으로 가 있겠다고 했지만 

끝내 응해 주지 않았던 남자 

이 시간에 전화 또한 무엇이든 내가 필요했었나 보다.

 

아침을 맞은 우리는 짐을 챙겼다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아버지 산소를 들을 계획이였다

노환으로 관절이 불편한 엄마는 움직이는 걸 싫어 하신다

말이 없으신 엄마는 그 표정을 보며 알아 차려야 한다

그러나 거절은 또 하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호텔을 나와 조금 걸어 들어가니 

소박한 식당이 있었다 

들어가 소박한 전통한식을 먹었다 

참으로 밥 먹은것 같이 먹었다 

간 밤의 식사가 부실했음 만은 아니였다 

이것이 우리의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운걸 못드시는 엄마도 순한 순두부찌게를 다 비우셨다

한층 밝아진 우리는 꽃집으로 가 꽃을 샀다 

꽃을 좋아 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화분의 꽃으로 가져가 심어 놓고 싶었지만 

심을 기구가 없어 그냥 꽃 다발을 샀다

차를 세우고 산소까지  더딘 엄마를 모시고 한 참을 걸었다 

들판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간간히 보였다.

산소는 잘 정돈 되어 있었다 

살아계신 엄마 한테는 별 관심이 없는 오빠가 아버지 산소는 말끔하게 

잘 정돈해 놓았다 

우리는 그곳에 꽃을 두고 기도를 했다 

산소를 둘러보고 정면을 바라 보았다

9월의 정면에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강한 햇살에 반짝이는 물의 수면은 맑은 여름밤 하늘에서 반짝이며 쏟아지는 별들 같았다

작은 휴대용의자에 앉은 엄마는 중얼거리신다 

그곳은 어떠요

좋으시요

혼자만 가 있지말고 나 좀 데려가시오

제발

나 좀 빨리 데려가란 말이요.

그 순간 내 얼굴에 눈물이 고랑을 만들었다

마르지 않은 고랑을,,,

10년 전에 아버지는 위암 제발로 돌아 가셨다.

2년간의 수술과 항암치료 를 거치며 고생을 하셨다

처음 수술 하실때는 큰 남동생이 직장을 쉬고 간병을 했다

너무나 잘 되서 의사들도 놀랄정도의 회복력이였다고 했다

78세의 노령으로 폐렴을 염려했던 의사들은 동생의 간병에 힘이라고 했다

합병증, 후유증없이 깨끗하게 낳으신 아버지는 

2년만에 제발이되어 회복하지 못하신 것이다.

제발된 후엔 여동생이 간병을 했다 

이혼 후 혼자 살고있던 동생은 주변이 간편했다 

아버지 간병에 전념을 할 수 있었다

두번의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 수없는 고비로 

중환자실과 무균실을 반복하며 그 여름 두 부녀에게 최악의 사태까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해 봄 진달래가 만발 했던4월 부활절 아침에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밤새 앓던 소리가 멈추고 잠시 조용하고 평안해 지시던 아버지는 

숨을 멈추신 것이다

옆에 있던 동생이 "아버지" 를 크게 외치니

잠시 숨을 고르시더니 힘든 표정으로 마지막 긴 숨을 드리키시고 그대로 가시었다.

그날은 부활절 이른 아침이라 오빠식구들과 엄마는 교회를 가고 나와 큰 남동생 여동생이 아버지 임종을 지켰다

밤새 앓던 신음소리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그렇게 쉬이 가실줄 알았으면 병원에부탁해서 몰핀주사라도 충분히 놔 드렸어야 하는데

어줍잖은 지식이 아버지를 고생시킨것 생각하면 지금도 숨이막혀온다.

고통이있을때마다 몰핀을 주사하면 중독되어 나중엔 듣지 않을까봐 아버지께 고통을 참으시라 

권했던 어리섞음과 죄를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나는 해답을 여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아부지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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