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집,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2020. 5. 30. 00:33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항공에서 본 모습

2년 만에 엄마를 보러 한국에 갔었다. 엄마의 몸이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말을 듣고 

더 늦어지기 전에 엄마와 함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추억을 만들고 싶어 시간을 만든 것이었다.

엄마는 여전히 시설에 머물고 계셨다.

언제나처럼 내가 가면 "우리 큰 딸이오" 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를 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과 함께 찾아간 엄마는 나를 힐끔 보시더니 텔레비전으로 얼굴을 돌리신다. 

이것이 무슨 상황인가 싶어 엄마를 불렀다.

"엄마 엄마 나 누군지 몰라?

저 왔어요. 나 좀 봐봐

"엄마 내가 누군지 몰라?"

"이리 아니냐 "

"응 맞아 엄마 "

옆에 있는 이 사람은 누구야?

"니 서방 아니냐"

"맞아 엄마 그런데 왜 아는 체를 안 해

나 오랜만에 왔잖아

엄마 보려고 달려왔는데 반갑지 않아?"

이내 무표정한 엄마는 또 시선을 돌려  텔레비전을 보신다 

뭔가 이상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시다는 걸 암시하신 것이었다.

나는 마음이 바빠지며 불안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를 되뇌며  먹먹해지는 가슴을 쓸어 담았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왔는데 그 계획대로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뭐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고향집으로 가기로 했다 

오빠가 살고 있는 고향집은 아버지와 함께  당신들이 지으셨던 집이다.

두 분이서 얼마나 애착으로 가꾸셨던가,

그곳에서  당신이 갈고닦았던  살림살이를 보면  삶의 의지를  깨우실까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그토록 가고 싶어 하시고 그리워하며 마지막을 그곳에서 보내고 싶다고 하셨던 집, 엄마의 집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곳을 알아보지를 못하신다.

오랜만에 보는 아들을 보고도 반응이 없으시다. 

엄마한테 엄마의 살림살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음을 깨닫고

그 집을 나와 호텔로 들어갔다.

호텔에 들어선 나는 엄마를 침대로 안내해 드렸다

엄마는 소파에 앉으시겠다며 자리를 옮기신다

잘 걷지 못하시는 엄마를 부축해 소파로 안내해 드렸다 

긴 한숨을 내 쉬신다. 듣는 이의 뼈 속을 깎는 듯한 긴 한숨에, 

그 표정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무엇을 내 뱉으시는 걸까,  서글픔에 잠긴 듯 

창밖으로 둔 시선에선 눈물이 비친다

그때에는 나는 몰랐다 

그 눈물의 의미를,

나는 그때를 생각하면 온 몸에 전기가 흐르듯 몸을 가만히 둘 수도,

가만히 막힌 공간에 있을 수도 없어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미친 듯 텃밭을 바라본다

남편이 가꾸는 텃밭에는 없는 것이 없다 

마늘이며 상추 파 깻잎과 방아잎 등

앞뜰과 뒤뜰에 꽃이 휘 드러지 게 피는 오월과 유월에

우리 집은 참으로 아름다운 꽃들의 세상이다. 수선화가 피고 지면 체리꽃이 

체리꽃이 지면 배꽃이,

이어서 철쭉과 이름도 알지 못하는 꽃들이 줄 을지어 피고 진다.

지금껏 생각 없이 바라보던 꽃들이 참으로 부럽고 고맙다.

지금 저렇게 꽃잎이 떨어져도 내년이면 다시 필 것이다.

새로운 얼굴로 

싱그런 얼굴로 

빵 그 시 웃으면 찾아올 것이다.

우리 인생도 저렇게 갔다가 다시 피어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그러나 한번 가신 엄마는 다시 볼 수가 없다

만질 수도, 들을 수도 없다 

잠시 눈을 감는다, 엄마가 쉬시던 긴 한숨이 내게로 왔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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