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란 무엇일까?

2020. 6. 16. 00:35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물은 아래로 흐를수밖에 없고 인생은 누구가 같은길을 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 후 나는 엄마를 방문했다.

엄마 모시고 있는 올케가 감사해 주려고 산 명품 가방을 들고.

엄마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2년 만에 본 엄마는 살아 계신 분이라고 상상이 안될 정도의 몰골이셨다

키는 절반 정도로 낮아져 있었고 

얼굴빛이 검게 변해 병색에 찌들어져 있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를 못하시며 

기침이 너무 잦아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부풀리며 한숨 한숨을 힘들게 쉬고 계셨다.

단 숨에 2M를 걷지 못할 정도이며

치아는 썩고  부스러져 몇 개 뿌리만 남아 있었다.

세상에 기가 막혔다. 사람이 2년 만에 이렇게 될 수가,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함께 사는 올케 마음을 거스르게 될까 봐 나는 내심을 감추었다.

엄마는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멀리서 오느라고 배고플 테니 밥부터 먹고 예기를 나누잔다.

변해버린 엄마를 본 충격 때문에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지만 

엄마를 위해 밥을 차렸다 

반찬은 먹다 남은 매운 김치에 고등어를 넣고 지진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물에라도 말아서 먹으려고 밥을 푸려는 순간 엄마가 하시는 말씀이 나를 강하게 내리쳤다

"내 밥은 저기 있다, 야야 내 밥은 저기 있어"

또 다른 밥통을 열어보았다.

말라있는 한 공기의 밥

그것이 엄마 밥이란다.

모든 물자를 아껴 쓰기로 소문난 짠순이 올케가 밥통을 두 개를 놓고 엄마 밥과 자신들의 밥을 구별했던 것 

엄마는 이미 오랫동안 그렇게 그들과 다른 밥을 드시고 계셨던 듯싶었다.

엄마는 영양 부족과 화로 인해 입술 주변이 붉게 변해있었고 

껍질이 벗어져 자극적인 것을 드시지를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 엄마를 입맛을 잃어서 언제나 물에만 말아 드신다고 내게 전화로 고자질했던 올케

엄마가 드실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자기들이 먹다 남은 잔밥을 따로 담아 뒀던 다른 밥통 밥, 그것을 엄마에게 주었던 올케,

나는 눈앞이 노랗게 변해 갔다

그래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울 것을 우려 해 눈을 감아야 했다.

그 밤 엄마방에서 함께 자려는데 밤새 화장실을 다니신다

내 기억으로는 약 20분 간격인 듯싶었다'

기침이 심하니 밥 새 사탕을 입에 물고 계시며 

다리에 힘이 없는 노인이 대문간에 있는 야외 화장실을 밤새 다니시는 것이다

실내에 화장실이 있지만 고장 났다고 사용금지를 시켰단다.

내가 사용할 때는 이상이 없었는데 엄마한테만 사용 금지시킨 것. 온몸이 떨려온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나와 함께 미국으로 가지는 않으실 엄마를 어떻게 해야 하나 밤새 고민을 했다.

엄마에게는  아버지가 남기고 가신 매달 나오는 연금과 목돈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살고 있는 집도 아버지가 직접 엄마 명의로 해 놓으신 것이다.

아버지가 마지막 유언으로 지시하시기를.

미혼으로 남은 막내 위한 결혼자금 통장.

엄마 노후에 병원 생활하게 되면 쓸 목돈 통장.

그리고 매달 생활할 수 있게 나오는 연금.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엄마를 끝까지 잘 모시는 자녀가 가져가라" 하고 유언을 남기신 것이다

큰아들과 둘째 아들에게는  현금으로 이미 나누어 줬었으나 막내아들은 미혼이기에

준비해둔 결혼 자금과 엄마의 통장을 둘째 아들에게 맡기신 상태였다.

물론 아들만이 자식이라는 사상이 깊으셨던 아버지는 딸들에게는 동전하나 남기지를 않으셨다.

그나마 여동생은 병간호했다고 위로금 천만 원이 있었지만 

나에게 남겨진 것은 티끌 하나 없으셨던 아버지. 

그러나 나는 서운함도 아쉬움도 없다. 나 또한 멀리 있기에 자식 된 도리를 못하고 산 것 아니겠는가.

자라면서도 그렇게 하셨던 아버지는 

오빠 위해 나를 희생시킨 일이 비일비재했으니

지금도 아버지의 결정에 이의가 없다.

그분의 사상에서는 옳은 결정을 하신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8개월 만에 오빠네가 엄마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를 모시겠다고 들어온 그들이 고마웠었다.

엄마는 그들이 고마워 당신이 가지고 있던 현금과 폐물을 올케한테 다 주셨단다.

그러나 그들의 속 샘은 다른 것이었음이 밝혀진 것은 나의 방문 시기였다.

형제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한국에 있던 동생들은 꿈에도 몰랐던 일 ,

오빠는 엄마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무에게 언급도 없이 엄마 집을 자기 명의로 돌려놓았다.

엄마 허락도 없이 인감을 도용해서 자기 앞으로 명의변경을 해 놓은 것.

엄마의 건강이 악화 상태로 가고 있었지만 병원 한 번을 안 모시고 간 그들

엄마 차를 자신 들것처럼 마음대로 이용하면서

엄마는 흔한 보건소 한 번을 안 모시고 간 그들.

엄마 손수건 하나 빨아 보지도 안 않고

먹다 남은 잔반을 준 것 까지 눈 감고 넘긴다고 해도 

엄마의 병세가 그렇게 심각해져도 누구 하나 관심이 없었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가려는데 교통이 불편했다

걸음도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노인을 모시고 대중교통은 엄두가 나질 않았고 

택시를 타려 해도 힘없는 노인을 길가에 세워 둬야 하는 게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엄마 차를 내주지 않은 올케는 그날도 엄마 차를 가지고 화장품 장사한다고 나갔다 

이런 상황을 여동생과 의논 하에 서울로 모시기로 했다.

어찌 되었건 서울서 모시고 치료부터 하기로 하고

올케를 불러 엄마 치료를 위해 돈이 필요하니 엄마 통장을 달라고 했다.

선채로 통장을 내 앞에 던진다. 통장에 돈이 없다.

"아니 왜 이것뿐이냐" 고 묻는 나에게 올케가 하는 말은 "오빠가 돈울 못 벌어 생활비로 다 썼단다."

자기들이 살던 아파트는 월세를 받고 엄마 집에 살면서 생활비까지 엄마 돈으로 하고 있었던 것 

당신의 돈을 한 푼도 써보지도 못하고 병원 치료도 못 받고 올케한테 다 뺏기고 있었던 것.

상상할 수 없는 논리에 더 이상 대꾸의 가치가 없었다.

빈 통장을 들고 

엄마를 모시고 서울로 향했다 

병원에서 당뇨검사를 하던 중 의사는 다급히 말한다 

지금 당장 입원하지 않으면 할머니의 생사를 장담하기 어렵단다.

피가 모자라서 서있는 자체가 기적이란다.

입원하신 엄마는 연달아 두대의 피를 주사했다

헛소리를 하신다.

헛것을 잡으신다

이상을 보이신다.

달려온 의사는 피주사 속도를 조절하고 지켜보자고 했다.

치매가 오는 건가.

이러다 엄마를 영영 놓치게 되는 건 아닌가 온갖 걱정에 그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다행히 엄마의 정신이 돌아오셨다.

생기까지 돌며 말을 하신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른 검사들을 요구했다.

몸상태가 내시경을 감당할 상태가 아니라서 못하고 다른 검사들을 했다 

어딘가에서 피가 새고 있지 않는다면 이 정도가 될 수가 없단다.

기침은 그동안 치료 시기를 놓쳐서 해소 천식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단다

치아는 다 뽑고 틀니를 해야 한단다.

무릎은 생활하는데 불편을 줄여 줄 수 있고 부드럽게 하는 주사가 있단다.

엄마의 건강상태가 이 정도 일 줄이야 

미리 때맞춰 치료를 했으면 건강하실 엄마를 버려둔 덕에 그 고통 속에 사셨던 것

엄마는 매사에 침묵하셨기에 다른 자식들이 몰랐던 것이라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이런저런 일로 병원비가 필요했다 

올케한테 엄마 명의 다른 예금을 보내 주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못해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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