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자식을 맺어진 사이

2020. 6. 16. 02:11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병아리 품듯 자식을 품으셨던 엄마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계실 때 오빠를 찾아갔다.

함께 의논을 해야 했기에 큰 동생을 불렀다. 

큰 올케는 일부러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다.

조카아이는 건넌방에 있으면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늦은 시간 의논하게 된 이유는 큰 올케가 추워서 엄마 집에서 더 이상은 못살겠단다.

할 말이 없었다. 못살겠으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통보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런 올케한테 엄마는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말이 없다.

다시 물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정확하고 단호히 생각을 말해 달라 

내가 와 있는 동안에 엄마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니 확실한 예기를 이 자리에서 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올케가 하는 말이 자기는 추워서 아파트로 가고 오빠가 엄마와 함께 여기 살게 하겠단다.

두 마리 토끼를 염두하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단호히 말했다 

오빠는 엄마를 모시지 못한다,

도리어 엄마에게 집이 될 뿐이니 가려거든 온 가족이 다 돌아가라

엄마는 누군가의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이지 보살필 상태는 못 되지 않느냐

그러니 엄마 걱정 말고 온 식구가 다 돌아가라.

그리고 주민등록도 옮겨 가라고 말을 했다.

올케는 고심 없이 바로 그러겠노라고 했고 그 일이 거기서 

다 끝난 듯했으나 

내가 다시 말을 했다.

아버지가 이 집을 엄마를 끝까지 잘 모시는 자녀가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러니 집 명의는 어떻게 할 거냐 하고 물으니

오빠 부부의 얼어붙은 표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던 그들 

이미 불법 명의 변경했음을 잊고 살던 그들이 나에게 들통난 것이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올케가 엄마 앞으로 돌려주겠단다 

올케 요구로 그 전반에 드는 모든 비용을 내가 부담키로 하고,,,

나는 흔쾌히 응했다. 얼마든지,,,

엄마 집만 엄마 앞으로 돌려놓으면 모든 경비는 내가 다 부담한다고 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여전히 엄마는 입원 중에 있으면서 검사를 하지만 피가 세는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체력이 감당할 정도의 모든 검사를 하고 있는 엄마는 계속해서 피주사를 맞고 생기가 돈다.

밥도 골고루 잘 드시고 기동 하시는 것도 한결 힘차다

색색 소리 내어 숨 쉬는 것 또한  계속해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어 한 결 수월해졌다.

보는 이 들도 그 며칠 사이에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놀란다.

6일쯤 지난 즘에 큰 올케한테 전화가 왔다.

엄마 집 명의 변경 못해 준단다.

현금으로 오천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돌려줄 수가 없단다.

그사이 뒤에서 누군가의  조종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엄마에 대한 안부는 한마디 묻지 않고 엄마 집 명의 돌려주는 조건으로 현금 오천만 원을 요구한다.

돈이 안 들어오면 명의변경은 없는 걸로 하겠단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알았습니다. 이문제는 언니가 그렇게 요구한다고 요구대로 다 되는 일 아니라고,,,

그리고 그동안 모르고 있던 동생들에게 알렸다.

막냇동생은 배신감에 부르르 떨고 있다 

당장이라도 내려가 일을 낼 듯한 동생을 달랬다 

조용히 하라 가만히 있으면  내가 알아서 돌려놓을 테니 

너는 가만히 있으라, 달랬지만 다혈질인 동생은 차라리 집에 불을 붙여 버리겠단다

절제 못하고 급한 성격의 동생이 걱정이 되어 나는 그와 협상을 했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내가 힘을 쓸 것이고 네가 나데면 나는 뒤로 빠지겠다.

동생은 집이 엄마 명의로 돌려놓을 때까지 가만히 있기로 약속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법의 도움을 받는 방법뿐이었다.

큰 남동생은 뒤로 물러났다.

하기는 자기도 엄마의 현금 통장체 가로채었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을게다.

엄마는 그렇게 도둑들을 자식이라고 키우셨고 지금도 그런 자식도 그리워하며 걱정하신다.

변호사를 샀다.

그간에 있었던 일을 듣던 변호사는 엄마 몰래 일 을 끝내 달라는 나의 요구에 그러겠노라 했다.

요즘과 달리 10여 년 전에는 한번 자식한테 증여된 재산을 도로 찾기가 무척이나 어렵단다.

하지만 오빠의 실책이 너무 확실히 드러났고 엄마에 대한 보살핌이

전혀 없었을 뿐 아니라 학대로 봐야 한다는 증거가 다 수집된 상태에서 

명의를 돌려놓겠다고 확신했다.

앞으로 동생들이 이일을 맡기로 하고 나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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