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서 걸어가는 나

2020. 6. 16. 21:53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집이라는건 건물이 아닌 마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느꼈던 느낌은 내 발이 걸을 때 땅을 닿지 않은 듯했다.

발이 디딜 곳이 없어 허공에서 헛 발질로 걷는 것 같은 느낌,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다 

앞으로 가려해도 제자리에서 발이 시늉만으로 걸어가고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그런 느낌.

나는, 나는 그랬었다.

그런데 아들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지극 정성이던 그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니 자신들이 왕권을 잡은 패륜 왕처럼 

모든 것을 자신들 뜻대로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식이라고 완벽히 믿어버린 어리숙한 엄마를 

속여서 불법으로 집을 빼앗고 

작은 아들은 노년에 병원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아버지가 엄마에게 남겨두신 돈울 통장체 가로 채 갔다.

다 가져가라,  가져가는 것 나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가져가야 할 것이고 이왕이면 큰 아들이 가져가야지 생각했었다 

그것이 집안 질서에도 좋다는  극 보수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내가 원했던 건 단 하나

엄마의 드시는 끼니와 건강이었다,

그 두 아들 외에 누구도 엄마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욕심을 냈던 자녀가 없었다.

요즘 빨래는 세탁기가 있어 엄마는 세탁기로 이용을 하시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릎도 쓰지를 못하는 분이 엎드려 손으로 빨래를 하시었다

나는 더 묻지를 못했다.

올케의 악행을 알아 버린 상태니 더 이상 알고 싶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더 다른 모습을 알게 될까 봐 나 스스로 두려웠다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리고 엄마의 희생을 요구했는지 모른다, 나를 위해서,,, 내가 충격과 상처를 더 받게 될 것이 두려워서,,,

엄마 집의 살림은 다 엄마 것이다.

남부럽지 않게 갖추고 사셨던 분들이다

5남매 자녀들보다 형편이 좋으셨던 아버지는 새것이 있으면 엄마를 위해 먼저 사 오시던 분이셨다

그러기에 식기서부터 수저 가전제품들이 언제나 좋은 품질로 남보다 앞서서 사용하셨던 분들.

그러던  엄마가 지금 저게 뭐야?.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한국의 소식을 전화로만 알게 된다

그간에 몇 차례에 걸쳐 순천 지방법원을 다니며 재판 중이란다.

그 사이 오빠도 변호사를 샀단다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엄마 집을 뺏기 위해 변호사를 샀다.

오빠는 나타나지를 않고 

올케가 딸을 앞세워 나왔단다.

상대측 변호사는 할 말이 없으니 

반반으로 나누자고 요구를 했단다.

결국엔 판사가 본인인 엄마를 보기를 원했고 

하는 수 없이 동생들이 엄마를 모시고 간단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한쪽 방에서 판사가 직접 묻는 질문에 

명 대답을 하신 것이다.

"할머님, 할머니 집을 큰 아들과 반반 나누시면 어떠겠어요?"

"아니 줄려면 다 주고 안 줄려면 다 안 줄 것이지 반반 나누는 게 뭐예요.

속상한 일만 생기게,,,"

그 대답을 직접들은 판사는 집을 엄마 앞으로 돌려놓는다로 판결을 내리신 것.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그 사건이 무엇인지 모르셨다.

엄마가 가실 때가 되니 의례히 통과해야 하는 관문인 줄만 알고 계시다 

가신 것은 그나마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집은 엄마 명의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그 집에서 버티고 살고 있다.

추워서 못살겠다는 올케도 

엄마 인감을 도용해서 명의변경을 했고 

변호사와 친구들까지 동원시켜 법적 싸움을 걸던 오빠도 아직 그 집에서 버티고 살고 있다.

그동안 엄마가 시베리 아였었나 보다.

엄마 안 계시니 따뜻한 집이 되어 춥다는 말 없이 아직도 그 집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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