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한 결혼이면 행복해야지

2020. 6. 20. 10:52나그네의 미국생활/엄마의 무거운 침묵

장미의 꽃말이 사랑이라 했던가

아들과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딸이라 할지라도 엄마에겐 편치가 않으셨나 보다

나를 떠나 한국 시설로 가신 후 엄마는 얼굴이 많이 편해지셨다.

식사도 천천히 하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신 듯했다.

무엇보다 시설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동무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열과 화병으로 인해 입술 주변에 붉게 변한 증상도 사라졌기에 식사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었다.

잠깐씩 모시고 나와 바람을 쏘이며 함께 밥을 먹고 다시 시설로 보내드렸다.

계속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지만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다. 생각하며 작은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엄마에게 운동량이 없어서 

다리의 근육이 점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여동생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차피 혼자된 상태이니 모든 면에 자유롭다

자녀들도 없고, 남편도, 시댁도, 주변에 눈치를 봐야 할 것이 없으니 

엄마를 모시고 살면 좋겠다 싶었다.

이모와 나는 동생을 설득했다.

직장 생활하는 것보다

엄마를 모시고 살면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고

엄마와 항상 함께 할 수 있고

엄마를 제대로 돌보며 운동도 시킬 수 있다. 하지만 여동생은 거절했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에 막내 올케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이 결혼을 했단다.

형제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막내부부만 초대하여 결혼을 했단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동생도 새 출발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남자 쪽 부모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만 살림에 어떤 도움을 주지는 않았단다.

남자는 가진 게 전혀 없는 50대 미혼이다.

결국 여동생은 엄마보다 남자를 선택한 것이다.  

여전히 엄마가 병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여동생이 모시고 다닌다.  나는 그렇게 못하고 있으니 그것 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다.

엄마는 오직 시설에 당신의 노구를 위탁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하게 넘어오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부분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70대 이상의 어른들의 인권문제이다.

그분들이 가장  크게 인권침해를 당하는 곳은 가족으로부터 일게다.

전쟁을 겪고 그 폐허 속에 허리띠 졸라매며 자녀를 길러냈고 

경제를 일으켰다.

그시대 어른들은 맛있는 것, 

그리운 것, 

취미, 

즐길 것, 들의 단어조차 모르며 하루하루를 버텨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들이 오늘날 자녀들한테  약탈과 핍박을 받는단다,,물론 일부겠지만,

이것은 정부차원의 대책이 있어야 할 거라고 생각을 하게 한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