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마녀 재판이 주는 교훈과 남긴 유산

2023. 1. 25. 13:08세상만사/종교

 

17세기, 기독교에 반대하며 불신앙적 사람들을 마녀로 동일시하여 수백 명의 희생자를 만들었으며 많은 사람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Giles Corey라는 남성은 압사를,   희생자 중 일부는 감옥에서 사망을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녀와 청교도 사이의 혈투이자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지게 한 마녀재판입니다.   

 

청교도주의란?


청교도(Puritanism)란  17세기 초 영국 로마 카톨릭 종교 관습으로부터 영국 교회를 정화시키자고 주장하던 종교 집단이자 미국 매사추세츠 살렘에 정착한 영국인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은 영국 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회 통치를 새우려고 미국에 왔으며 기독교와 가톨릭 사상을 바탕으로 새로운 종교를 만들었고 스스로를 전지 하다고 여겨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거룩한 삶을 위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또한 순결한 삶을 위해서는 마귀의 유혹과 사악함을 피해야 한다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관은 칼빈주의 교리를 채택하여 예정론을 강조했으며 제한적 구원론을 강조했고 인간은 전적타락으로 죄성을 추구할 것이라 믿었으며, 인류가 악에서 떠나 선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택한자들이 본인들이라는 우월감 속에 자신들의 그룹에 함유 하지 않은 모든 외부인들은 어둠 속에 있는 불쌍한 영혼들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적 행위로는 흡연, 도박, 술 취함을 거부하고 성구에서 나오는 모범적 신앙인들을 모방하는 것이었습니다.

 

위와 같은 교리를 바탕으로 종교적 자유를 위해 영국 국교를 떠나  미국 매사추세츠로 이주하여 종교적인 신념이 같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신대륙에 자리를 잡은 청교도들은 신앙적 자유와 권력이 있었으며  이 커뮤니티 그룹에서 이탈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술이란


주술이란 문화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정의됩니다.

전통적인 주술은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녀와 같은 이미지라면 오늘날의 주술은 조언과 상담이 포함된 주관적인 합리성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주술은 타인에게 해를 입히지만 오늘날의 주술은 건강이상을 알려주던지 갑작스러운 불행에 대한 설명과 해답으로 조언을 해 줍니다. 

 

1486년에 출판된 Malleus Maleficarum(마녀의 망치)에서는  마법사를 식별하고 고문하고 근절하는 방법으로  마녀를 막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산채로 불태우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청교도와 마녀 

 

셀렘의 마녀사냥은 썩은 빵이 원인이었습니다. 

새로운 식민지를 찾아 망망대해를 항해했던 청교도들의  매사추세츠에서의 공동체는 순결하고 의롭게 믿음생활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영국에서부터 경험했던 주술적 악마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마녀들은 이미 항해의 배에 함께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미국땅에 도착한 주술적 마법은 새 땅에서 의로운 신앙생활을 하려는 청교도들에게 위협이 되고 공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지역사회에서 갑자기 병에 걸린 아이들이 경련과 함께 기괴한 증상을 보이며  동물 같은 행동이 있었습니다.  기도를 해도 병세가 낳아지지 않는 소녀들을 본 지역 의사는 저주에 의한 것이라고 선언했고.  

이윽고 불신앙이던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이어 마녀 재판으로 이어졌고  처형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마녀재판의 진짜 원인은?

 

1626년,  영국 식민 정착민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역에 도착하여 정착지를 건설하고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의 이름을 따서 살렘으로 개명했습니다.
이후 개척자들이 물밀듯 밀려와 소규모 정부를 세우고, 토지 소유권 및 종교의 권력에 변화로 갈등과 불안이 가중되고 

식민지의 헌장과 리더십의 변화, 프랑스 식민지 개척자와 원주민 동맹국과의 충돌, 천연두 전염병,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고통과 우려가 고조되었습니다.

 

1670년대,  시골 살렘 마을과 새로 번영하는 살렘 마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될 때 새로운 살램마을에 자체교회를 세우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목사를 임명하자 논쟁이 커지며 마녀 사냥의 토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 후 1691년에 영국의 윌리엄 왕과 메리 여왕은 임명된 관리를 통해 왕에게 더 많은 통제권을 부여하고 청교도 식민지로서의 매사추세츠의 지위를 위협하는 식민지 헌장을 발행했습니다.

1692년 1월 지역경찰은 시골 살렘 마을  Samuel Parris 목사의 목사관에 마녀 용의자를 구금했으며 치안 판사는 공개적으로 피고인을 심문하였습니다. 피해자 중 일부는 소지품을 압수당했고,  많은 용감한 사람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주술혐의로 170명의 유죄 판결과   25명의 무고한 남성, 여성, 어린이가 부당하게 처형되었습니다.

1년 동안이나 지속된 살렘 마녀 재판은 미국 역사에서 편협함과 불의를 정의하는 예입니다 

 

 


마녀재판이  어떻게 끝났습니까?

 

1692년 여름 법원이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마녀재판 반대가 커지고

식민지 여러 장관들이 마녀재판에 비판적인 글을 쓰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을 때  1697년 매사추세츠 정부는 마침내  마녀 재판을 포함하여 식민지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하루의 공개 금식과 기도를 명령했습니다. 

 

18세기에 들어 과학적 개념이 확산되면서 마녀에 대한 믿음은 쇠퇴기를 맞고 무고한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유괴 판결하는 것이 불가능해 젔습니다.  이후 마녀 재판 판사와 관련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자백했고  1703년 매사추세츠 주는 마녀재판 피해자들에 대한  1차 사면을 발표했고  2001년에야 모든 사면 절차를 완료했습니다.

 

그로부터 300년 후, 마녀 재판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졌으며  마녀 재판 기념관을 만들었고 이 수치스러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인권 및 사회 정의를 위한 연례 셀렘상을 수여합니다.

 

 

한마디 

 

종교인이자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 반성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지금도 편협되고 고지식한 사고로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만드는 기독교인은 아닌지,

살인하지 말라고 한 10 개명을 나 아닌 타인에게만 적용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신앙적 자유를 찾아 식민지생활을 자체 했던 청교도들이 하나님의 진리와는 더 멀어진 신앙이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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