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27. 18:22ㆍ나그네의 미국생활/일상 생활속에 이모저모
최근 "미나리"라는 영화가 이민자의 생활상을 그린 영화라고 하여, 한 사람의 이민자로서 많이 보고 싶은데 아직 보지를 못해 아쉽습니다.
미국의 이민자들 사이에서 구전이 되어 내려오는 말이 있는데 "누가 공항에 픽업 나오느냐"에 따라 "미국에서의 살아가는 삶이 정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픽업해 주는 분의 삶의 반경 안에서 안내를 받고 그 안내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고 삶의 터전이 정해진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주로 이민자들을 픽업해서 정착하는데 목사님들이 많은 도움을 줍니다.
- 기거할 아파트를 안내해 주고,
- 살아갈 직장을 안내해주고,
- 살아가는데 필수인 운전면허증를 얻는데 등록부터 시험, 면허증을 받을 때까지 돕고,
- 은행 계좌를 열고
- 아이들 학교에 등록도 안내를 하고
- 주거지에 전화나 전기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 수시로 필요한 것을 위해 목사님을 찾을 경우, 시도 때도 없는 도움을 주는 목사님들이 계십니다
목사님들은 한사람의 교인을 전도하는 목적으로 쉽지 않은 일들로 봉사를 하겠지만.
- 목사님의 무료 서비스를 받고도 어떤이들은 불만이 있고,
- 어떤 이들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 어떤 이들은 감사하지만 교회는 안 나간다 하고,
- 어떤 이들은 조용히 교회를 다니다가 소리 없이 떠나기도 합니다.
저 역시 미국에 처음 왔을때 목사님이 픽업을 했었습니다. 인터넷이 자유롭지 않을때 한국에서 미국의 랜트카를 얻는데 자유롭지 못해 목사님께 폐를 끼쳤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성격상 거기까지 였습니다. 목사님이 더 도와주시려 해도 공손히 거절했고,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 닥친 나의 일들을 남의 도움으로 헤쳐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 "그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베이비 부머들이 받은 교육은
- 주입식이고
- 공식을 외우며
- 문법 중심이었습니다. 특히 영어는 듣고 말하기는 전멸해서 시험을 보면 만점일지라도 말하고 듣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우리 자신의 일은 우리 스스로 헤쳐가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운전이 가능하지만 차를 살수가 없었습니다. 차를 사고 자동차 보험을 사기 위해 우선 미국의 운전 면허증을 얻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미국은 컴퓨터로 면허 시험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그자리에서 바로 시험에 합격을 했고 도로 주행시험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는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영어로 되어 있는 시험문제는 해석하는데 많이 혼동스러웠습니다. 답을 찍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시험감독관이 와서 상황설명을 해줍니다. 열심히 설명을 해 주셨는데도 영어가 귀에 들어오지를 않으니 버벅거리고 있었나 봅니다. 그래도 이해 못하는 제가 안타까웠던지 정답을 손으로 찍어주고 갔던 감독관이 지금도 가끔은 생각이 난답니다.
남편은 도로 주행도 무난히 합격하여 그자리에서 면허를 손에 넣었지만 저는 감독관이 찍어주기까지 했는데도 네 번을 내리 떨어졌습니다.
다섯 번째 필기시험을 겨우 합격하고 도로 주행을 하는데 또 떨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사고 경험으로 인해 트라우마가 생겨서, 많은 차들이 유입되는 로터리에서 무릎이 굳어버립니다. 옆에는 감독관이 앉아있는데 오른쪽 다리가 달달거리더니 액셀을 밟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동행했던 시험감독관이 외칩니다. " you fail, 10 Day" (너 탈락, 10일 후 재시험)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10일을 기다릴수가 없었습니다. 자동차를 사야 하고 자동차 보험을 사야 하는데 마음이 급했습니다.
영어로 말도 못한 주제에 감독관을 쫒아 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했습니다 자동차 보험과 관계가 있으니 1주일 후에 재시험 보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감독관은 알아 들었는지 one Week를 외칩니다. 기쁜 마음으로 돌아온 나는 마음을 가라 앉히며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힘겹게 운전면허증을 손에 쥐고 드뎌 미국에서 발이 생긴 것 이었습니다. 차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던 지역에서 발이 생기고 보니 자유로움을 얻고, 그때부터 나는 생활 영어를 배우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손님에게 귀찮다는 표현을 할 수 없는 쇼핑몰로 갔었습니다.
- 물건을 샀다가 물건을 반품도 해보고
- 물건의 크기나 용도등에 대해 직원을 불러 물어보기도 하며
- 주변 사람들한테 특정 장소의 위치나 관공서를 물어보고
- 한국에 없던 물건들을 들고 적극적으로 질문도 해 보며 그들이 어떤 식으로 말을 하는지
- 그리고 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듣고 흉내 내며 실질적인 생활용어들을 익히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로 가려면 일단 현지인들의 말을 어느 정도 알아 들어야 선생님들의 강의를 들을 것이란 판단에서 였습니다. 그렇게 미국의 첫 걸음을 떼며 새로운 인생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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