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벌레와 동거했던 호텔을 소개합니다.

2021. 1. 19. 01:25 일상 생활속에 이모저모

지난해 어느 날 작은아들은 한국을 간다고 전화가 왔다.

출장도 아니고 모든 걸 접고 한국으로 간단다. 출발 비행 하루를 앞두고 통보하듯 온 전화는 궁금증과 염려로 아들을 집으로 호출을 했다. 밤늦은 시간까지 집으로 달려온 아들은 차도 처분을 해서 기차로 달려왔다.

어떤 상황인지를 자세히 듣고는 말릴 수가 없었다.  민족적피가 태어난 고향이 그리워서 가고 싶다는데 어찌 더 말릴 수가 있겠는가?....

아들은 어려서 떠나 온 한국에 대한 동경이 심했다. 유난스레 한국에 대한 우월의식이 있었고 한국 음식에 대한 갈망과 한국 문화에 대한 간절함과 그 정서를 느껴 보고 싶어 했다. 어렸지만 한국인으로 남고싶어 개명도 하지않았고 국적 포기도 하지않고있다.

그러던 아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 가겠다고 노래를 했고, 나는 "나중에 우리 모두 함께 가자"하며 아이를 지금껏 눌르고 지내왔는데,  지난해 봄에 다시금 발동을 했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세계가 산만할 때 인지라 다시 또 말리며 주저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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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아이는 지난 10월 코로나를 아랑곳 하지않고 3개월의 한국살이를 위해 한국으로 출발했다.  아들은 인천에 도착해서 2주를 호텔에 격리를 하게 되는데 하루 입실료가 12만 원의, 인천에 있는 마리아나 베이 호텔에 머물게 되었단다.  공항 국립 인천공안 검안소에서 임의대로 정해준 숙소였다고 한다.

 

인천 마이라나 베이 호텔

 

어느 날 격리 중인 아들로 부터 전화가 왔다. 바 선생이 있어 많이 불편하단다.  나는 생각하기를, 코로나 때문에 격리한다면서 두 사람씩 넣었나 싶어 물었다. 친구랑 같이 갔니?. 아들은 단호히 NO 한다.  그럼 공항에서 한방에 두 사람씩 넣었니?  역시 NO,  그럼 바 선생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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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내 주는데 바퀴벌레가 침대에 까지 올라와 있다.  가방 위에도 기어 다니고 침대에 올라오기까지,, 이게 무슨 일이야,, 벌래 하나 잡을 줄 모르는 아이가 얼마나 공포에 떨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몸서리가 처진다.

 

바뀌벌레 시체 

호텔 측에 말을 했더니  방을 바꿔 준다고 했단다,  그러나 이틀을 더 지낸 다음에 방을 바꿔 줬는데 그곳은 더 험했단다. 얼룩진 매트리스에 청소가 되어 있지 않은 듯한 내부는 아이가 2주를 머물기에 엄청난 스트레스였던 거 같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그동안 여러사람이 이용했을 호텔에 바뀌벌레 나오는 곳인지 몰랐을리 없는데 공항 국립 인천 검안소가 이런곳에 임의대로 정해 준다는 것이다.    저정도의 바뀌벌레 호텔이면 그동안 많은 항의를 받았을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임의 격리 장소로 이용한다는 것은 호텔과 무슨 커넥션이 있지 않나 의심마저 들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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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벌레 흔적

 

아들은 항의를 했지만 방을 바꾸어 주는 것 외에 사과도 없었다고 한다.  여행을 망치기 싫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2주의 격리를 마치고 나왔단다.  아들은 한국인의 혈통이여서 이해하고 갈 수도 있다지만 다른 나라 여행자가 겪었을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첫인상이 어떻게 비추어 졌을까 싶다. 

곁으로 화려한 것 같지만 속 내면의 얼룩진 것들, 눈가리고 아웅 하는 듯 한,,,,,언제까지 이럴 것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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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더러운 매트 

 

침대위에 까지 올라온 바뀌선생

 

지나가는 바뀌벌레를 잡다

 

리모컨을 차지한 바퀴벌레

 

아들은 3개월의 한국살이를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잊지 못할 강한 한국의 첫인상을 가지고,,,. 이것이 22년을 갈망하며 그리워하던 아들에게 남겨진 한국이다.    지금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집에서 2주 격리 중이다. 

대학 1.2년만 학비를 도와 주고 3.4학년은 스스로 학비를 벌어서 다녔던 아들은  4학년 초부터 정식 취업을 했었다,  한주에 40시간의 일을 해야 하기에 학교 수업 때문에 빠진 날은 주말에 일을 하므로 40시간을 채워가며 일과 공부를 겸해서 했었다.   물론 1.2학년때도 인턴쉽을 하고 프로그램을 만들어 팔기도 하며 열심히 살았던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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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졸업과 함께 학자금을 다 갚았지만 좋업후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자유가 그리웠던 모양이다. 돌아온 아들은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은 다 풀렸는지 격리가 끝나면 물어보리라.   미안하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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