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의 미국생활(169)
-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떤 공항을 가다 보면 종종 혼란을 느낀다 두 갈래로 갈리운 길에서 어디로 가야 하나 결정해야 할 때, 그 끝이 한정된 곳은 돌아 나오던지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올 수 있지만 끝을 모르는 상태에 놓인 갈래길은 깊은 계산적 생각이 필요하다. 산다는 건 선택인 것 같다 매 순간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그 끝은 천차만별의 결론을 낸다 눈을 뜨고 있으면 보이는 양갈래 길,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혼란의 길에서 고뇌의 길에서,,, 앞으로만 갈 수밖에 없는 외길은 힘든 숙제이고 복종해야 하는 명령이다 선과 옥중에서 의와 불의 중에서 도의와 현실 중에서 진리와 편리 중에서 매 순간의 선택은 영원한 책임을 지운다 나는 선택을 잘했는가? 앞으로 선택할 기회는 얼마나 남았는가.?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며..
2020.06.24 -
엄마의 유품
엄마는 아버지 옆으로 가셨다. 2주 전에 엄마와 합께 아버지 산소를 방문했을 때 "나 좀 데려가시오" 하시던 말을 듣고 아버지가 데려가셨나 보다. 하관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가 살던 집으로 갔다. 지금은 오빠가 살고 있지만, 엄마 아빠가 지으시고 애착을 가지고 가꾸셨던 곳 엄마의 손때 묻은 살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 마지막으로 나는 엄마의 67년 인생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그곳을, 엄마의 채취가 있고 손 때 묻은 곳을 돌아보고 싶었다. 이것은 엄마의 67년 인생의 흔적을 내 눈에 담을 마지막 일 것이다. 다행히도 대문이 열여 있어 들어가 본 집은 그야 말고 창고였다. 아버지는 꽃을 좋아하셔서 넓은 터 여기저기에 다양한 꽃들을 가꾸셨다 희귀한 꽃들이 있는 집으로 통할만큼, 꽃들의 정원이었는데 아버지가 가..
2020.06.23 -
몰래 결혼했던 동생의 이혼
엄마 모시는 걸 거절하고 재혼의 길을 택한 여동생은 재혼한 지 4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이혼을 했다. 잘 살길 바랬지만 주변의 바람과 달리 끝을 낸 것이다. 첫 단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주변에 오빠들이 둘이나 있지만, 알리지도 않았고, 나에게 역시 알리지 않았었다. 이웃에 사는 막내 남동생만이 결혼식에 참여를 했단다. 첫 결혼을 실패한 동생은 오랫동안 혼자 살았다. 첫 번째 결혼할 당시 상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10년 위인 나를 뜯을 정도로 자기가 원했던 결혼이었지만 이혼 또한 자기가 스스로 끝을 냈던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약지 못한 동생이 안타깝다 두 번의 결혼 실패의 원인은 돈이었다 동생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동생의 것인 줄 알고 있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날로 법원으로 가 이혼 절차를 밟은..
2020.06.23 -
이 몸이 창공을 날으는 새 라면
내가 새라면 산 넘어 높이 높이 올라 그리운 엄마를 만나겠다 내가 새라면 바다 저 멀리 날아가 보고픈 아버지를 만나겠다 날지 못한 새의 눈에 비친 창공은 푸르고 넓기만 한데 물에 젖은 날개가 한 짐 삶의 무게랴 날마다 자라나는 그리움은 야윈 모가지를 만들고 꿈을 실은 너의 날개에 창공은 멀기만 한데 멈출 수 없는 날개 짓에 천근이 실리니 꿈을 접은 너의 삶 허상 일 뿐 이어라,
2020.06.21 -
엄마가 돌아가셨단다
내가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랜딩을 했다. 평소 여행 시에는 짐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던 나는 엄마와 생활하려면 필요한, 때 이른 옷 가지를 넣었기에 케리어를 끌게 되었다. 트랙을 빠져나오는데 주위 사람들께 미안할 정도로 핸드폰이 요란하게 신호를 한다. 깨똑 깨 깨 똑 트랙을 빠져나와 한쪽에 서서 확인한 후 나는 순간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서울로 가지 말고 여수행 비행기로 바로 이동해서 오라는 메시지였다. 사람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건강하던 분이 토했다고,, 당이 좀 올라갔다고,, 그렇게 돌아가신 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괸찮아졌다고 했는데,, 정신없이 난리를 치고 개찰구를 빠져나왔지만 여수행 비행기도, 열차도, 공항버스도 다 끈 긴 상태였다, 결국 강남터미널에서 고속으로..
2020.06.21 -
말이 없어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엄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엄마가 아직 인지도 있고 기동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노라 다짐하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 내게 남편이 동행을 하겠단다. 자신의 형제들도 노년기에 있으니 겸사겸사 함께 가겠노란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 함께 갔다 2년 만에 나를 보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리 아니냐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요 반갑지 않아" 별 반응을 하지 않으신다. "엄마 이 사람은 누구야?, ""니 서방 아니냐"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급하게 남편을 누나 내로 보내고 엄마와 고향을 향해 여행을 했지만 달라지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침..
2020.06.21 -
엄마가 치매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앞에 흔한 찻잔은 없지만 심도 있게 예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사시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예상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어 나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일찍 히 다짐을 했었다. 만일 엄마가 자주적인 행동에 어려움을 겪든지, "치매"라는 손님이 찾아올 때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 는 생각으로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라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했지만 단호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내 생각을 예기했다. 동생은 화를 냈다 "왜 언니는 거꾸로 살고 있어, 남들은 그런 상태가 되면 시설로 들어가는데, 왜 반대로 해 반대로, " 나만 거꾸로 산단다, 노인성 치매 초기라 아직 이상은 보이 지를 않지만, 내 마음은 급해졌다..
2020.06.20 -
몰래 한 결혼이면 행복해야지
아들과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딸이라 할지라도 엄마에겐 편치가 않으셨나 보다 나를 떠나 한국 시설로 가신 후 엄마는 얼굴이 많이 편해지셨다. 식사도 천천히 하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신 듯했다. 무엇보다 시설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동무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열과 화병으로 인해 입술 주변에 붉게 변한 증상도 사라졌기에 식사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었다. 잠깐씩 모시고 나와 바람을 쏘이며 함께 밥을 먹고 다시 시설로 보내드렸다. 계속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지만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다. 생각하며 작은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엄마에게 운동량이 없어서 다리의 근육이 점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여동생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차피 혼자된 상태이니 모든 면에 자유롭다 자..
202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