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골 골짜기의 빨래터는 잊고 훨훨 날아가시길,,,

2022. 12. 7. 13:55나그네의 미국생활/일상 생활속에 이모저모

조선시대 빨래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가까운 사람과 이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것인 듯합니다

거의 매 해마다 가까운 지인들이 한분 두 분 떠나 가시는 것을 보면서 내 차례가 머지않음을 느끼며 자연의 순리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쩌다가 동물로 태어나 죽음이란 이별을 겪어야 하는지,,,,

마음의 준비도 없이 엄마를 보내고서 죄책감과  우울증으로  지난 3년을 보냈고  이제 겨우 가슴에 벌렁증이 아물어가며 잊고 지내는 날이 생겼는데  오늘 새롭게 그 상처가 다시 생체기가 나려 합니다.  

 

대장암으로 고생하시던 80대 후반의 권사님이 오늘 저녁 무렵 눈을 감으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렇게도 아끼던 막내 동생이 죽은 지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몇 달 만에 이어서 본인이 하늘나라도 가신 것입니다. 

아마도 홀로 간 동생을 지켜줘야 한다는 마음에 급하셨나 봅니다. 

주인을 잃은 수백장의 악보도 함께 날아갔다

 

고인이 살아온 길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국민들 중에 배를 곯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고인이 되신 권사님은 참으로 어려운 삶을 사셨습니다. 

연세가 드셨지만 곱고 품위 있게 생기신 분인데 그 얼굴에 담긴 사연이 참으로 아픕니다.

 

권사님이 10살도 되기도 전에 어머님을 여의셨고 이후 몇 년 안 되어 4남매의 자녀만 남겨두고 아버님마저 세상을 떠나셨답니다. 당시 녹록잖은 살림에 남산골 아래 거적 더미 같은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맏 딸이었던 권사님은 갓 10살을 넘긴 상태였고 아래로 젖먹이 막냇동생과 천지분간 못하는 2명의  동생들이 권사님만 쳐다보고 있는 처지였답니다.  

 

어찌어찌 이웃의 도움으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빨래를 했답니다. 

추운 겨울, 어린 막냇동생을 업고 빨래 그릇을 머리에 이고 남산골 골짜기에 가서 빨래를 해가지고 오면 손이 얼어서 감각이 없어진답니다. 

그럼에도 동생들을 먹일 수 있어 그 일을 계속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어린 소녀의 성실함이 인정이 되어 군부대 내에서 심부름을 하며 일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에서 남편을 만났습니다 

큰 언니, 큰 누나는 작은 도랑을 따라 흘러갔다

 

 

동생들을 미국으로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살아온 권사님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은 물자가 너무나 싸고 풍족하여 천국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했습니다. 

권사님은 당연히 동생들을 생각을 했을 것이고 이어 3남매의 동생들을 다 미국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미국에 와서 각자 자리를 잡은 동생들이지만 권사님의  동생들 돌보미는 끝나지 않았으며 동생들 모두를 주변에 두고 살면서 살폈습니다. 

지난해, 엄마처럼 업어서 길렀던 막냇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올해 당신이 동생이 간 그 길을 따라간 것입니다.

일 평생을 동생들을 못 잊어 애달파하더니 이제는 그 마음의 짐을 홀가분하게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불과 7, 80년 전의 우리네 부모님의 삶이었습니다.  

 

친인척이 있어도 서로가 먹을 것이 부족한 시대엿음으로 도움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갓 10세 남짓에 너무 큰 짐을 지기 시작했고 평생을 그 짐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권사님은 좋은 남편을 만나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그리고  권사님 나이 50대 후반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업어서 키웠던 막냇동생은 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두 동생은 남아 있으며 그들의 마음도 많이 고통스러울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어두웠던 한국 역사와 함께 무거운 짐으로 얼룩진 삶을 사셨던 우리네 어른들도 역사라는 이름 안으로 하나 둘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역사와 그 속에서  역사를 만들었던 우리네 어른들을  결고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짊어졌던 무거운 짐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부디 권사님, 동생에 대한 걱정의 짐일랑 다 벗어던지고 가볍게 훨훨 날으시기를 바랍니다.   

저 천국에서 동생 만났을 때는  동생의 보살핌을 받으며 행복하시길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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