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자유인이 되기까지의 발자취

2022. 1. 23. 19:01미국

노예 출신 흑인 작가 Frederick Douglass

 

오늘날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 가장 큰 그룹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주로 노예의 후손들입니다.  

미국의 노예 제도는 최초 유럽인들이 신대륙 발견을 위해 북미를 탐험하던 때부터 남북전쟁 이후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합법화된 제도였습니다. 
  

최초 노예제를 만든 탐험가


1508년 스페인 탐험가 폰세 데 레온이라는 사람은 새로운 정착지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했을때 주변의 원주민 타이노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면서 최초 인간 노예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513년  타이노 타람들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인원의 노예를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푸에르토리코로 데려 오면서 본격적인 아프리카인들을 사냥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  노예 제도가 더 이상 없을까요?

 

노예 무역의 중심지가 된 플로리다 주 세인트 어거스틴

 

 

1530년, 그 유명한 흑인 사냥가 에스테반과 일부 탐험가들이 미시시피 계곡과 사우스캐롤라이나, 그리고 뉴 멕시코 지역에 정착하였고 1581년 플로리다 주에 정착한  스페인들이 아프리카인들을 미 본토로 데려오면서 노예무역의 중심지를 만들었습니다. 

 

1619년 이유없이 잡혀온 20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돈에 팔려 버지니아로 갔고 이들을 돈을 지불하고 노예로 사 온 사람들 역시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들어온 유업인들 이었습니다. 
 
몇년후 개척자들은 노예들을 계약된 하인으로 잡 간동 안 풀어 준 적도 있었으나,  비옥하고 넓은 지역을 개척해 가는 개척자들은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했고 이는 이어 인종을 기반한 노예제 도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노예 무역상들은 더많은 노예들을 확보하기 위해 넓은 지역 다양한 민족 아프리카인들을 포로로 잡아들여 미국의 노예무역시장을 키웠습니다. 자세히 보기 ☞  세계 노예 제도에 대해 몰랐던 것들

 

 

유럽 소비자와 노예의 관계

안정적인 유럽인들은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작물을 선호 했습니다.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의 노예 무역상들은 신대륙에서 생산되는 설탕, 술, 담배와 교환하기 위해 유럽과 가까이 있던 아프리카인들을 잡아 인도했고 결국 미국 버지니아 담배, 뉴잉글랜드 럼주, 사우스캐롤라이나와 조지아의 인디고와 벼 등을 중심으로 한 무역로가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기      우리는 연구 대상이 아닙니다!, 펜 박물관 흑인 유해 처리 비난행진

 

참혹한 과정의 아프리카인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인들의 여정은 끔찍했습니다.  많은 아프리카인들이 전쟁이나 습격으로 포로로 잡혀 아메리카로 향한 노예 수송선에 올랐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배에 승선하기 전 가족과 분리된 사람들은 성별 나이별로 구분되어 작은 관 크기의 선반에 쇠사슬에 묶였습니다. 


종종 여성 포로들은 선원들에 의해 강간을 당했고 영양실조와 탈수로 질병이 퍼져 약 3분의 1은 팔리기 전  바다에서 사망했습니다.
도착한 아메리카에서는 그들은 경매를 통해 농장 소유자에게 팔렸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언어와 관습. 풍습, 종교는 무시당한채  유럽의 모든 것을 강요받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새로운 삶의 방식을 뿌리내린 아프리카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가족을 이루며 노예생활을 유지했고 기독교에 입문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발전시켰습니다.  
 자세히 보기     흑인 유해가 미국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이유

 

 

잔혹한 노예생활

노예들의 삶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노예 소유자들에게 유리한 법은 노예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습니다.  가혹한 처벌에서 성적 착취까지,,,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져 다른 지역으로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노예들은 언제나 가족과 분리될 것의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으며, 일부 노예들은 강제 판매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될 때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1641년 매사추세츠를 시작으로 이어 버지니아까지 노예제도를 합법화 했으며, 1750년까지 흑인 노예를 제산으로 인식하는데 합법화를 했습니다. 이 제도로 노예의 후손은 대대로 평생을 노예로 만든 것입니다.  

자세히 보기   네티브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유산 보호운동

 


전투에서 활약한 흑인

경작지가 넓고 활발했던 많은 지역에서 노예제도는 법적 보호속에 활발했지만 상대적으로 북부지역은 노예들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자유를 얻은 노예들은 북부로 이주하여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1790년까지 노예와 자유 흑인은 거의 760,000명에 이르렀고 미국 인구의 거의 5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17세기와 18세기 흑인 노예들은 미 남부에서 담배와 염료용 인디고 쌀을 재배했습니다.  1800년대까지 쌀, 설탕, 목화는 남부의 주요 작물이 되었습니다.  

수요가 증가하는 설탕과 면화를 위해 노예 소유자들은 잉여 노예들을 남쪽으로 판매하며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가 가장 큰 노예 시장이 형성되었습니다. 자세히 보기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문화

 

 

노예제도 폐지


1800년까지만 해도 노예 양도가 허용되었으나 1804, 대부분의 북부 지역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 되었습니다. 남부지역에서도 일부 양심 있는 소유주들은 노예들을 해방시켜 자유롭게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1808년 연방 정부가 해외 노예무역을 불법화했지만 남부의 흑인 노예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1820년에서 1860년 사이 북, 남부 노예 인구 60%가 남부에 팔려 이동하며 하루에 25~30마일을 걸어서 남쪽으로 행진했습니다. 이동 과정에서 여자들을 밧줄로 묶었으며 남자들을 목에 쇠사슬로 묶고 수갑을 채웠습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한 산업 혁명은 목화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고 미국의 수출품이 되면서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남부 농부들은 노예제도를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목화가 주 재배지였던 남부지역에서 전체 인구 4분의 3 이상이 흑인 노예들이었습니다.  자세히 보기     인디언들 그리고 흩어진 부족들의 발자취

 

 

노예들의 반란 

1860년까지 약 400만 명의 흑인 노예들은 남부지역에서 농장에 노동자였습니다. 이부 노예는 장인, 숙련 노동자 또는 공장 노동자와 같은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적은 수는 요리사, 집사 또는 하녀로 일했습니다.

남북 전쟁이 시작되고, 북부의 자유 흑인들과 남부의 도망친 흑인들은 그들 민족 해방을 위해 연대하며 연방을 위해 싸우겠다고 연대를 시도했습니다.  1863년 1월 1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노예 해방 선언하면서 남부의 300만 노예가 공식적으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가출한 노예들이 연합군에 합류하여 1865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200,000명의 흑인 남성이 미 육군과 해군에서 군인으로 복무했으며 4만 명의 흑인 군인이 전쟁에서 질병과 부상으로 사망했습니다.  

1865년 6월 19일, 텍사스 주 갤버스턴에서 미국의 마지막 노예가 풀려났습니다. 현재 자유의 날로 불리는 이날은 1866년 이후 흑인들이 기념해 왔으며,  1980년, 텍사스는 에 공휴일로 선언했다가,  2021년 6월 의회는 압도적인 초당적 투표를 통해 6월 19일을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습니다.

1866년의 민권법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완전한 미국 시민으로 만들었으며 남부의 재건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자세히 보기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에 찍힌 인디언

 

흑인 작가 Frederick Douglass

 

노예로 태어났던 흑인 작가 Frederick Douglass는 메릴랜드에서 주인의 아내로부터 글을 배워 1838년 메사추 세트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하며 노예 폐지 운동의 영향력 있는 작가, 편집자, 강사가 되었습니다.  그 유명한 Underground Railroad는 남부에서 북부로 탈출한 수천 명의 노예들의 발이 되었습니다.

 

 

한마디

인간은 선성 설인가 선악설인가? 갈리는 의견은 끝이 없는 논쟁거리입니다.  아프리카인들의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기까지를 살펴보면서 대한민국의 조선시대 신분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부터 어떻게 도입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은 동족끼리도 노예제도가 있었으며,  현재 인도에서도 다양한 신분제도로 인해 동일하게 인권이 착취당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현대의 노예제도는 눈에 보이는 제도권의 노예제가 아닌 물질의 노예, 권력의 노예, 시스템의 노예로 스스로 신분을 정하는 노예인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평등합니다.

 

자세히 보기    고구마를 파는 메노나이트 사람들

자세히 보기      아미쉬 공동체 살아가는 모습과 랭케스터 뮤지컬 극장

자세히 보기    미국에 특별한 의미인 콜럼버스 데이에 숨겨진 진실

자세히 보기    여성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

자세히 보기    미국 역사 속에 충격의 8일

자세히 보기     암살당한 역대 미국 대통령

자세히 보기  ☞  미국 대통령에게 주어진 지원 혜택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이 도움 되셨다면 공감과 구독 댓글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질문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 남겨주세요. 고민해 보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