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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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셨단다
내가 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랜딩을 했다. 평소 여행 시에는 짐을 많이 들고 다니지 않던 나는 엄마와 생활하려면 필요한, 때 이른 옷 가지를 넣었기에 케리어를 끌게 되었다. 트랙을 빠져나오는데 주위 사람들께 미안할 정도로 핸드폰이 요란하게 신호를 한다. 깨똑 깨 깨 똑 트랙을 빠져나와 한쪽에 서서 확인한 후 나는 순간 정신을 놓은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서울로 가지 말고 여수행 비행기로 바로 이동해서 오라는 메시지였다. 사람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건강하던 분이 토했다고,, 당이 좀 올라갔다고,, 그렇게 돌아가신 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분명 괸찮아졌다고 했는데,, 정신없이 난리를 치고 개찰구를 빠져나왔지만 여수행 비행기도, 열차도, 공항버스도 다 끈 긴 상태였다, 결국 강남터미널에서 고속으로..
2020.06.21 -
말이 없어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엄마의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엄마가 아직 인지도 있고 기동도 할 수 있을 때 마지막 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겠노라 다짐하고 직장에 사표를 냈다 비행기 표를 알아보는 내게 남편이 동행을 하겠단다. 자신의 형제들도 노년기에 있으니 겸사겸사 함께 가겠노란다, 거절할 명분이 없어 함께 갔다 2년 만에 나를 보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엄마 나 누군지 알아?" 고개를 끄덕이던 엄마를 향해 다시 물었다. "이리 아니냐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요 반갑지 않아" 별 반응을 하지 않으신다. "엄마 이 사람은 누구야?, ""니 서방 아니냐" 엄마는 달라져 있었다. 급하게 남편을 누나 내로 보내고 엄마와 고향을 향해 여행을 했지만 달라지신 엄마는 별 반응이 없었다. 침..
2020.06.21 -
엄마가 치매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앞에 흔한 찻잔은 없지만 심도 있게 예기를 나누었다. 엄마가 사시는 동안 나는 한국에 가 있겠다고 말했다. 예상했지만 남편은 단호히 거절한다. 그러나 나는 포기할 수가 없어 나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일찍 히 다짐을 했었다. 만일 엄마가 자주적인 행동에 어려움을 겪든지, "치매"라는 손님이 찾아올 때는 남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 는 생각으로 마음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금이 그 시기이다, 라는 생각에 남편을 설득했지만 단호했다. 한국에 있는 여동생에게 내 생각을 예기했다. 동생은 화를 냈다 "왜 언니는 거꾸로 살고 있어, 남들은 그런 상태가 되면 시설로 들어가는데, 왜 반대로 해 반대로, " 나만 거꾸로 산단다, 노인성 치매 초기라 아직 이상은 보이 지를 않지만, 내 마음은 급해졌다..
2020.06.20 -
몰래 한 결혼이면 행복해야지
아들과 함께 사는 것뿐만 아니라, 딸이라 할지라도 엄마에겐 편치가 않으셨나 보다 나를 떠나 한국 시설로 가신 후 엄마는 얼굴이 많이 편해지셨다. 식사도 천천히 하며,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신 듯했다. 무엇보다 시설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동무들이 있어 다행이었다. 열과 화병으로 인해 입술 주변에 붉게 변한 증상도 사라졌기에 식사도 자유롭게 하실 수 있었다. 잠깐씩 모시고 나와 바람을 쏘이며 함께 밥을 먹고 다시 시설로 보내드렸다. 계속 함께 할 수 없어 아쉽지만 모든 걸 다 만족할 수는 없다. 생각하며 작은 스스로 위로를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엄마에게 운동량이 없어서 다리의 근육이 점점 빠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는 여동생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어차피 혼자된 상태이니 모든 면에 자유롭다 자..
2020.06.20 -
엄마 정말 미안해요
엄마를 한국으로 보내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다시는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리라 하고 모시고 왔지만 6개월을 끝으로 엄마를 한국으로 보내 드리기로 결정을 했다. 엄마는 날마다 한국으로 가겠다고 조르시더니 이제는 아예 옷을 입고 계신다; 비행기표가 고속버스표만큼이나 쉬운 줄 아시나 보다. 며칠 후면 엄마의 생신이시다 나는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것이다 싶어서,,, 엄마가 좋아하는 팔찌와 목걸이를 샀다 그리고 생신을 앞두고 엄마는 한국으로 가셨다. 홀로 비행기를 타고 가셨던 엄마는 많이 힘드셨던지 막내아들 집에 도착 후 엉뚱한 소리를 해서 모두가 놀랐던 것이 생각이 난다. 여동생은 엄마를 시설로 모셨다. 나는 엄마가 한국으로 가시기 전에 이해를 시켰다 "엄마 한국으로 가시면 시설로 가셔 그러면 ..
2020.06.19 -
한인들의 요양 시설을 생각했다
엄마의 마음은 이미 한국에 가 있다. 날마다 한국으로 보내 달라 조르던 엄마는 드디어 옷들도 싸 두었다. 사워 후 몸을 감싸던 대형 타월이 좋으셨는지 당신이 쓰시던 타월을 함께 넣으셨다. "엄마, 쓰던 수건을 왜 가져가려고 그래, 짐만 되는데 " "내가 쓰던 거니까" 엄마한테 이해를 시키기 위해 나의 생각을 설명을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보내기 싫다고,,, 앞으로 끝까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고 엄마를 모시고 왔다고 했다.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들떠 있던 마음이 가라앉는 듯했다. 아니 포기하는 듯했다. 그러나 엄마는 한국 정서에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집에서 두 시간 거리에 한인들이 있는 요양시설이 있다 낮에 노인들을 모시고가 온종일 식사와 간식을 주기도 하고 시간에 맞춰 특별한 운..
2020.06.18 -
한국행을 원하시는 엄마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은 엄마는 준비해 두고 간 식사를 거르신다 퇴근 후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엄마 식사를 준비해 같이 먹는다 준비 해 두고 간 간단한 식사도 거르시는 엄마에게 화가 났다 영양식으로 건강 회복을 시키고자 작정하고 애를 쓰는데 엄마는 혼자라는 이유로 식사를 거르고 계시니 많이 속이 상했다 싫은 소리를 한 후 엄마가 안쓰러워 엄마 한태 물었다 "엄마 서운해? 내가 화 내서 서운해요?" "아니 안 서운해 " 그렇게 대답하시는 엄마가 더 가슴 아파서 속이 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직장을 고집하고 다녔는지 후회가 많다 그때 만일 퇴직하고 엄마와 함께 했더라면 상황이 많이 달랐을 텐데,, 이런 후회가 남을 것을 알면서도 직장을 그만 두지 못했던 건 결혼이 늦은 나에게 아이들이 이..
2020.06.18 -
엄마를 외면하고 남자를선택한 동생
미국에 도착하신 엄마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영양식이었다 그동안 심각하게 부실했던 식사를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출근해야 했던 나는 새벽이면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준비 해 두고 갔다. 퇴근 후엔 목욕을 시켰고 또 식사를 준비했다 엄마를 두고 출근하는 데도 마음이 편했던 건 동생이 함께 있으니 가능했다. 준비 해 둔 식사는 다 잘하신다. 한 가지는 식사 시간이다 정신없이 들이붓듯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면 보는 이가 숨이 차다 땀을 흘리며 급하게, 씹지도 않고 삼키시는 걸 보면서 그동안 어떤 식사를 해 오셨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천히 드시라고 하지만 숨차고 급하게 드시는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가 않는다. 엄마의 수저를 붙잡고 천천히 드시라고 말씀드리면 알았다고 하시지만 다시금 수저가 바빠..
2020.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