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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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안 늙을 거라 생각하니
여동생 집에 머물고 계시는 엄마를 방문했다. 많이 좋아 보였다. 움추러져서 작아졌던 키도 많이 펴진 듯했고 얼굴의 병색도 사라졌다 무엇보다 가슴을 들썩이며 쉬셨던 호흡이 많이 편해지셨다 집중치료를 받은 결과로 쌕쌕하던 소리도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치아 관리는 못하셔서 부스러지고 깨어져 있던, 앞쪽 남겨진 뿌리 이가 입술을 찔러서 불편을 겪고 계셨다. 아직도 입술 주위에 붉게 번진 이상증세는 가라앉지 않았고 무릎 문제 역시 해결이 되지를 않았다. 혼자 사는 동생이 엄마를 모시기가 힘겨운가 보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고 활동적인 동생은 온종일 엄마로 인해 신경 써야 하는 것이 싫은 눈치다. 이혼 후 자유롭게 살던 그녀는 그 자유를 침해받는 것을 불편해한다. 막내 남동생이 엄마를 모시고 가려고..
2020.06.16 -
허공에서 걸어가는 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느꼈던 느낌은 내 발이 걸을 때 땅을 닿지 않은 듯했다. 발이 디딜 곳이 없어 허공에서 헛 발질로 걷는 것 같은 느낌, 누구도 상상 못 할 것이다 앞으로 가려해도 제자리에서 발이 시늉만으로 걸어가고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그런 느낌. 나는, 나는 그랬었다. 그런데 아들들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지극 정성이던 그들이었는데 아버지가 안 계시니 자신들이 왕권을 잡은 패륜 왕처럼 모든 것을 자신들 뜻대로 하려고 했던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식이라고 완벽히 믿어버린 어리숙한 엄마를 속여서 불법으로 집을 빼앗고 작은 아들은 노년에 병원비가 필요할 것이라고 아버지가 엄마에게 남겨두신 돈울 통장체 가로 채 갔다. 다 가져가라, 가져가는 것 나는 관심이 없었다. 어..
2020.06.16 -
법적 자식을 맺어진 사이
엄마가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계실 때 오빠를 찾아갔다. 함께 의논을 해야 했기에 큰 동생을 불렀다. 큰 올케는 일부러 아주 늦게 집에 들어왔다. 조카아이는 건넌방에 있으면서 나와 보지도 않는다. 늦은 시간 의논하게 된 이유는 큰 올케가 추워서 엄마 집에서 더 이상은 못살겠단다. 할 말이 없었다. 못살겠으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데, 통보하는 이유가 뭘까? 나는 그런 올케한테 엄마는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다. 말이 없다. 다시 물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단호히 말했다. 정확하고 단호히 생각을 말해 달라 내가 와 있는 동안에 엄마를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니 확실한 예기를 이 자리에서 해달라고 말했다 그때 올케가 하는 말이 자기는 추워서 아파트로 가고 오빠가 엄마와 함께 여기 살게 하겠단다. 두 마리 ..
2020.06.16 -
자식이란 무엇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2년 후 나는 엄마를 방문했다. 엄마 모시고 있는 올케가 감사해 주려고 산 명품 가방을 들고. 엄마를 보는 순간 기가 막혔다. 2년 만에 본 엄마는 살아 계신 분이라고 상상이 안될 정도의 몰골이셨다 키는 절반 정도로 낮아져 있었고 얼굴빛이 검게 변해 병색에 찌들어져 있고 호흡을 제대로 하지를 못하시며 기침이 너무 잦아 대화가 이어지지가 않고,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을 부풀리며 한숨 한숨을 힘들게 쉬고 계셨다. 단 숨에 2M를 걷지 못할 정도이며 치아는 썩고 부스러져 몇 개 뿌리만 남아 있었다. 세상에 기가 막혔다. 사람이 2년 만에 이렇게 될 수가, 하지만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함께 사는 올케 마음을 거스르게 될까 봐 나는 내심을 감추었다. 엄마는 나에게 밥을 먹으라고 하신다 ..
2020.06.16 -
아버지 죄송합니다.그리고 존경하고 사랑 합니다.
8년 전에 엄마를 미국으로 모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홀로 남은 엄마가 걱정이 되어 미국에서 나랑 함께 살자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단호히 거절하셨고 더 이상 설득을 못한 나는 엄마를 여동생에게 맡겨두고 돌아왔다. 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부터 나는 밤에 깊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전화벨이 울릴 때면 가슴부터 방망이 질이며, 생활을 하면서도 온갖 신경은 고향 부모님께 향해 있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긴장감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아버지에 대한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화를 통해 듣게 되었고, 병원에 계시던 아버지를 뵙고 작지만 안도의 쉼을 갖었었다 위 전체를 들어내신 아버지는 상상하고 염려했던 것보다 좋아 보였다. 그렇게 되기까지 큰 남동생이 고생이 많았다는 걸 알았다. 동생은 ..
2020.06.15 -
스스로 고립 되어가는 엄마
내 기억에 엄마는 살림을 잘하시는 편은 아니셨다 집을 깨끗이 치운다든지 반찬들을 만들어 가족을 챙긴다든지 하는 모습은 본적이 별로 없다. 청소는 주로 아버지가 하셨다.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깨끗한 걸 좋아하셨다. 엄마가 게으르다고 하시며 언제나 당신이 청소를 하신다. 엄마는 언제나 살아 가는걸 힘겨워했다 타고난 체력이 강하지도 못하셨지만 젊을 적 결핵을 앓으셨다. 장기간 치료차 드신 약으로 인해 부신피질이 망가졌고 그로 인해 언제나 피로를 느끼며 무기력하단다 그 때문인지 언제나 일을 무서워했다.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기에 무섭기도 하셨을 거 같다 그럼에도 엄마는 깔끔하고 꼼꼼하며 자존심이 강했다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단호히 거절하고 피한다. 그 예로 틀니가 필요했지만 더럽다는 생각을 하시며 치아 몇 개로 불편..
2020.06.13 -
배려가 없는 남편이 야속하다
이번 방문에 남편이 동행을 한 건 목적이 있어서이다 중국 여행이었다. 이 나이가 되어도 철없는 남편은 자기 중심적이다 혼자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남편은 엄마 때문에 방문하는 나를 졸랐다. 늦기 전에 중국을 가보고 싶단다. 내가 엄마와 못다 한 시간을 갖고 싶다는데,,, 나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참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제오늘 일이랴 원래 저런 사람 그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시간을 만들었었다. 그렇게 엄마를 시설에 두고 우리 부부만 중국으로 갔다 기쁨도, 즐거움도 그 깊은 마음 속에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인데, 엄마한테는 이렇게 허비할 시간이 없는데, 엄마한테 다시 오지 못할 시간인데,,, 즐거워하는 남편을 향한 원망과 미움과 함께 엄마에 대한..
2020.06.12 -
가족과 함께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
환자와 노인들이 머무는 양로시설은 정해진 일수 이상 안에 머물러야 한단다 일수가 모자라면 국가 보조금 받는데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장시일 외출을 하려면 퇴소를 했다가 다시 입소하기를 권한다 그러나 다시 입소를 하려면 엄마가 거주하던 방을 보장을 못하고 입소 역시 장담이 어렵단다 이해는 하지만 특수한 여건에 따라 융통성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나처럼 멀리서 엄마 보러 왔지만 둘만이 시간을 갖고 싶을 땐 대책이 없다 엄마를 모시고 제주도로 가서 함께 못다 한 추억을 만들고 못다 한 예기를 나누고 그동안 못다 한 정을 나누려고 계획했지만 엄마의 건강이 감당이 어려워 포기했고 게스트 하우스에서 라도 내가 밥을 해서 드리고 한 밥상에서 먹고 반찬 올려드려 가며 맛있다고 또 맛없다고 하고,,, 짜다 싱겁다, 하..
2020.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