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언니, 큰 누나는 작은 도랑을 따라 흘러갔다

2022. 2. 6. 19:01나그네의 미국생활/일상 생활속에 이모저모

큰 누나의 희생으로 동생들을 살렸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또 가야 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들이 하나 둘 떠나가는 것을 볼 때면 왠지 모를 허탈감에 한동안 마음의 몸살을 앓게 됩니다.

 

얼마 전 갓 70을 넘은 한인 여성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한글을 쓰고 읽을 줄도 모를 정도로 제도권 내의  배움이 없던 분이었습니다. 

남편은 전통적인 인디언혈통의 퇴역 미군이었고 오래전 한국에서 근무할 때 이 여성을 만나 결혼을 하고 미국으로 함께  이주해 왔습니다. 자세히 보기  ☞  직장인 목에 걸린 ID 카드의 무게는 몇 그램?

 

여성의 남편 나이가 15년 이상 손 아래이지만, 세상떠나는 날까지 자녀도 없이 함께 해로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추측할 수 있겠지만 한국에서 특수한 여성들을 비하하기 위해 부르는 칭호로 "양공주"라는 말을 듣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부터 70년대 중반까지 우리네 큰언니 큰누나들은 가족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배울 수도 없었고 줄줄이 이어지는 동생들을 키우기에 힘겨워 하는 부모님들을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야 했습니다.

 

자의 반 타의 반 그들의 인생은 겨우 몇 시간의 잠을 자고 나면 일을 해야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돈은 자신이 써 보지도 못한 채 동생들을 먹이고 키우는데 쓰였습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지인은 좀 색다른 직업을 가졌었습니다.  아마도 손에 들어온  돈의 액수 차이 때문에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세히 보기   코로나의 습격을 이기지 못한 지인

 

나이가 많도록 동생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노동에 내 몰리던 그녀는 운 좋게 한참 어리지만 착한 미군을 만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미국으로의 이주는 친정 식구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는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홀어머니와 3남동생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였습니다. 

 

 

배고프고 못살던 한국에서의 삶과 달리, 그 시대에 미국은 일손이 없어 웃돈을 얹어주며까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전력하던 때 였습니다. 

여성의 세 남동생들은 누나의 보살핌 속에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하였고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버젓하게 잘 들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을 사회의 주류권에서도 처지지 않게 전문직으로 잘 자랐고 자신들의 삶도 여유로움을 누릴 정도로 잘 살게 된 것입니다.자세히 보기   모니터링 되고 있던 내 시간들

 

 

이렇게 되기 까지 이 여성은 미국으로 데려 온 동생들을 위해 손과 발이 되어 주었고 언어가 되며 글을 아는 남편을 앞세워  취업을 시켰고 조카들 학교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집을 사고 사회적응을 위해 많은 분야에서 그들를 도왔습니다.  

 

이제는 동생들에게 자신이 아니어도 도울 수 있는 그들의 자녀들고 있고 해서 그들을 향한 염려를 내려 놓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될 때가 되었는데  이 여성은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오직 친정 동생들 거두는 일에 온 일생을 받쳤던 여성은 친구도 없습니다.

자녀도 없습니다.

교회생활등 어떤 커뮤니티 생활에도 제대로 참여 하지를 못햇습니다. 

 

 

나편과 단둘이 살아가던 그녀에게 위급한 순간이 왔다는 소식에 달려간 큰 동생 부부는 평소 그녀의 유언대로 눈을 감은 누나를 조용히 화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덕아래 작은 도랑에 뿌렸답니다.  다리가 아파 걸음이 불편하다는 그녀의 남편도 참여하지 못한채,,,,

 

그녀의 마지막 가는 길도 외롭고 허전하게,,,

그리고 동생들에게 폐끼치지 않게,  그렇게 조용히 큰 동생 손에 의해  좁은 또랑을 타고 떠내려 갔습니다. 

그녀가 남긴것은 키우던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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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지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이 여성의 큰 올케와 통화를 했습니다.

남편이 밥을 못 먹고 말이 없어졌다고 불평을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올케에게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생각나는 건 "남편을 좀 가만히 놔두세요. 

마음의 고통을 충분히  앓고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옆에서 말도 걸지 말고 없는 것처럼 그냥 멀리서 기다려만 주세요".라는 이것이 다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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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한 방울 뛰지 않은 제가 생각해봐도, 이 여성의 일생이 너무나 가엽고 아파왔습니다.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 마음의 몸살을 앓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만큼 가슴에 멍울이 집니다. 

 

우리네 큰누나를, 큰 언니를 죽도록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시대의 모든 큰누나 큰 언니는 친정을 위해 희생하였고,  이들의 희생은 오늘날의 한국을 만들었습니다. 요즘 흩어져 가는 가족을 생각하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큰 누나의 희생이였습니다.

 

청계천 봉제공장에서 죽도록 일하던 그 언니들, 또한 그 또래의 큰누나들, 어디서 사시던지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들께 마음의 빛 진 자로서 작은 보답의 기원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이제는 평안하시고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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