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퀘벡은 왜 프랑스어를 쓰게 되었을까?

2023. 10. 9. 22:55지식인/문학과 문화,인물

캐나다 지도 속 퀘벡

 

캐나다 퀘벡은 왜 프랑스어만 사용하는 것일까?

 

프랑스 본토를 여행할 때도 영어로 소통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영어권 나라의 일부인 캐나다에서 영어로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으며 알고 있던 것보다 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퀘벡은 온타리오, 뉴브런즈윅, 래브라도, 뉴펀들랜드, 미국의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뉴욕과 접해 있어 풍부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어권인 영국에 속하면서 영어권 케나다 안에 있는 하나의 주이면서도 프랑스 언어만 사용하는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은 어떤 책일까

퀘벡을 여행하면서 관광지가 아닌 일반 서민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섬들과 외딴 지역을 돌아다니며 로컬에서 나는 과일도 사고 지역음식을 먹고 잠도 자는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역 주민들이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며 적잖히 놀랐습니다. 

 

퀘벡이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사용하게 된 역사적 이유

 

길게 대서양을 끼고 있는 퀘벡의 행정부는 의회 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영국 국왕을 군주로 한 영연방의 하나인 케니다 총리 산하에 있지만 주 행정부로 독립적이기도 합니다.

퀘벡만의 독특한 행정과 문화에는 복잡한 역사가 있습니다.

캐나다에서 프랑스어는 그 나라 언어법상 공식 언어중 하나로 명시하며 학교에서 영어와 동일하게 가르치는 언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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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에 프랑스어의 역사

 

1534년 프랑스의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 아시아 탐험을 위해 대서양을 항해 항해하다가 케나다의 최 동북부 뉴펀들랜드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이 후로 프랑스의 모피 무역상들 중심으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주했으며 영국인들이 도착하기 시작한 18세기까지 프랑스 식민지로 성장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점차 들어오면서 프랑스어를 열등한 언어로 취급하던 영국민들과 조율이 필요했으며 1774년 공존 집단을 위해 영어와 프랑스어를 같이 사용하기 위한 민법을 두게 되었습니다. 

 

17년 후, 영국 국왕은 북부 캐나다와 퀘벡이 중심이 된 남부케나다로 나누면서 이 민법은 폐지됩니다. 

1867년 케나다가 영연반의 주가 되면서 온타리오, 퀘벡, 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의 4개 주로 나누어지고  프랑스어는 퀘벡의 공식 언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1969년 공식 언어법을 통해 영어와 프랑스어 모두 케나다의 공식 언어로 합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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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방언

 

프랑스어에는 다양한 방언이 있습니다

케나다에서 공식언어로 인정되었지만 여전히 다양한 지역에서는 지역 방언이 사용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퀘벡 프랑스어는 아카디아 프랑스어와 다르며, 메티스 프랑스어와도 다릅니다. 미주리 프랑스어와 루이지애나 프랑스어도 퀘벡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와 다르며 캐나다 외부에 존재하는 프랑스어 방언도 있습니다.

 

 

퀘벡의 원주민


퀘벡에는 프랑스 탐험가가 들어 오기전 이누이트 민족퍼스트 네이션 이라 불리는 원주민들이 대규모로 살고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모피 무역상들이 원주민들과 무역 거래를 하게 되면서 이 지역에 혈통이 혼합된 원주민이 많이 생겼으며 그들은 가장 큰 원주민 단체의 Cree입니다.

이들은 상업적으로 전략적 관계를 맺으며 무역을 하고 있을 때

 

1534년, 무역상이자 탐험가인 자크 카르티에가 캐나다 땅에 대한 프랑스의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북미 영토를 장악하기 위한 유럽인들의 투쟁은 일련의 전쟁과 조약으로 이어졌습니다.

1756-1763 까지 퀘벡의 7년 전쟁 이후 지역이 영국에 양도될 때까지 그 지역은 프랑스의 일부였습니다.

이 기간동안 프랑스는 여러 부족들과 원주민 부족과의 동맹에 의존했으며 

영국인은 이로쿼이족, 카토바족, 체로키족과 서로 다른 간격으로 동맹을 맺었습니다.

 

여러 유럽국가들이 캐나다에 지분을 위해  싸움에 뛰어들었지만 최종적으로 프랑스령이던 케니다 점령을 위해 싸운 것은 영국이었습니다.  그들은 1759년에 퀘벡 시를 점령했고, 1763년 파리 조약으로 프랑스는 캐나다를 영국에 양도했습니다.


프랑스가 케나다를 영국에 양도했지만 언어에 대한 지배력은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1763년 이전까지 프랑스의 일부였던 퀘벡의 공식언어는 프랑스어 였습니다. 이 지역에서 사용되던 프랑스어는 개척자들의 고향 언어인 브리타니, 노르망디, 일드프랑스 지역의 방언의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가 퀘벡을 영국에 양도한 후 영국 식민지가 되었지만 주민들은 언어와 종교에 대해 권리를 부여받았습니다.

 

 

오늘날 캐나다 이중언어에 대한 헤게모니


1867년 케나다는 산업화와 현대화를 위해 정부와 국제 비즈니스에서는 영어로 사용하게 됩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퀘벡에 들어오는 이민자들은 비 프랑스어 사용자가 증가했습니다.

1961년 퀘벡에 영어가 지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계 캐나다 민족주의 들에 의해 "소수 언어 보존과 보호"하려는 운동이 일어납니다. 

1977년 프랑스어 헌장(Bill 101)은 제한적이라는 부정적 의견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어를 공식 언어로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언어보존에 대한 고의적 노력은 퀘벡에 두 개의 언어가 존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고 동시에 프랑스어 문화 영역에서 일종의 르네상스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법안 21(세속주의법)과 96(프랑스어 보존법)이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면서 캐나다 지역에서는 언어와 문화적 헤게모니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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